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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고궁,사찰,기타)

남해여행 8 - 금산 보리암 (09. 01. 11)

by 柔淡 2009. 1. 14.

불교용품 판매소앞에서 일출을 본후 보리암으로 내려갔다.

2년전에도 2월말에 왔었는데 겨울에만 남도에 오게되는것 같다.

 

보리암 소개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尙州面)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1901년과 1954년에 중수하였고, 1969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국의 3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현존하는 건물로 보광전, 간성각, 산신각, 범종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보리암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이 있다.

이외에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으며 그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이 관세음보살상은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태조 이성계가 기도하던곳

 

 불교용품 판매소

 

보리암 삼층석탑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상주리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탑.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남해 금산(錦山) 상봉에 위치한 보리암 앞에 있는 3층석탑이다. 전설에 의하면,

683년(신문왕 3)에 원효(元曉)의 금산 개산을 기념하기 위하여 김수로왕비 허태후(許太后)가 인도의 월지국(月之國)에 갔다가 돌아올 때

풍파를 만나 건너오지 못했는데, 허태후가 탄 배에 파사석(인도에만 있는 석재)을 싣고 오자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건너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돌을 가지고 원효대사가 보리암 앞에 세운 것이 바로 이 탑이라 한다.
재질은 화강암이고 고려 초기의 양식을 보이고 있는데 상륜부 이상은 약간 파손되었으나 후에 복원되었다. 석탑은 1층부터 3층 옥개석(탑의

맨 위쪽에 있는 덮개돌)까지 높이는 1.8m이고 1층 한쪽의 길이는 1.2m이다. 3층 탑신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고, 상륜부(相輪部)에는

귀한 구슬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2006년에 갔을때 이탑옆에 사진을 찍는 아저씨가 한분 계셨는데 나침반을 탑 1층 네모난 덥개석위에 올려 놓아도 북쪽을 가르키지

못하고 뱅뱅 도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파사석에 자석 성분이 있어서 그런걸까?

 

 

 

 

 

 

 

 

 

 보리암 정상. 시간이 많으면 정상까지 올라가 봤을텐데 일행들이 있어서 아쉽게 그냥 내려왔다.

 3층석탑에서 내려다본 상주해수욕장 일대

 

 

 

 

 한려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