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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제천의 대표적 관광지, 청풍 문화재단지 1 (09. 10. 17)

by 柔淡 2009. 10. 22.

1975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관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천을 떠날때까지 충주댐은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지금은 수몰된 양평이라는 마을에 이모님이 살고계셔서 방학때마다 청풍엘 갔었는데 그때는 제천에서 버스를

타면 비포장도로를 두시간정도 달려 북진 나루터에 도착하면 큰 나룻배가 버스를 싣고 강을 건너는 그런

시절이었고 강을 거너서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했다.

어린마음에 버스를 싣고 강을 건너는 배가 얼마나 신기하던지....

예전에도 상전벽해란 말에 해당되는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되었다.

충주댐이 1978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85년에 완공되었다니 벌써 25년이 되었다.

 

관관공사 홈피 참조

충주호를 굽어보는 호수의 산마루에 자리잡고 있는 청풍문화재단지는 충주댐 건설로 인해 청풍의 옛날 화려한

이름만을 전설처럼 남긴 채 물에 잠기게 되자 1983년부터 3년여에 걸쳐 현재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다.

이 곳에는 한벽루, 금남루, 팔영루, 응청각, 청풍향교 고가 4동 등 보물 2점, 지방유형문화재 9점, 비지정문화재

42점과 생활유물 1,900 여점과 유물전시관에는 300여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옛 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입구에 제일먼저 팔영루가 보인다.

 뒤쪽은 관덕문이란 현판이 붙어있다.

 

 후산리,도화리, 황석리의 고가를 옮겨온 것들이다.

 

 

 

 산수유나무가 빨간 열매를 맺었다.

 

 

  

 

 * 응청각
이 건물의 용도는 알 수 없으나, 본래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다.

고종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중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198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

하였다. 2층 누각으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
이곳은 청풍부의 청사로 쓰였던 동헌건물이다. 청풍은 삼국시대에 사열이현이었으나, 신라 경덕왕때 청풍현이라 하였다.

고려 충숙왕 때 지군사가 되고, 조선 세조 때 군이 되었다. 현종 초에 도호부로 되었으며, 고종32년에 군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청풍면이 되었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중수하고,권돈인이 편액을 써서 걸었다.

고종 37년(1900)에 부사 현인복이 전면 보수하였다. 본래 청풍면 읍리 203-1번지에 있었으나, 충주댐의 건설로 인하여 1983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정면 6칸, 측면3칸의 팔작집이다. 일명 명월정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청풍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 한벽루 (보물 제 528호)
이 건물은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다. 이 루는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 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층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이다.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이번 팸투어 이틀째의 해설하시는 분은 나중에 알고보니 고등학교 동창의 부인 이셨다.

세상이 참 넓고도 좁다.

그분은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는데 석물을 자세히 보려면 석물에 물을 부으면 좀더 뚜렷하게 보인다는걸

그분 때문에 알게 되었다.   

이 문인석에는 새가 꺼구로 새겨져 있고

 

 

 반대편 문인석에는 귀면이 새겨져 있다. 

 이 고인돌에는 북두칠성과 북극서이 새겨져 있는데 설명을 듣지 ㅇ낳았으면 모를 내용이다.

 

 *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이 불상은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

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앞에 까맣고 둥근돌은 자기 나이수대로 돌리면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속설이 있단다. 

 후문으로 내려가는길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