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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대구]근대문화의 발자취, 중구 골목길 투어 1 - 선교사, 3.1운동길

by 柔淡 2011. 5. 20.

여행을 좋아하여 주말마다 사진기 하나메고 전국각지를 떠돌아 다니는 내게도 대구는 늘 스쳐 지나가는

도시중 한군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1박2일로 대구 이곳저곳을 돌아보니 오랜역사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아주 매력적인

도시라는걸 조금은 느낄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다양한 역사와 이야기 꺼리가 담겨있는 골목길 투어가

가장 인상적 이었는데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대구는 조선시대 부터 경삼감영이 있었던 역사상으로도 오래된 도시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적들이 파괴된 6.25 전쟁의 참화를 절묘하게 피해간 행운의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다른 어느도시에 비해 근대 문화유적이 많이 남겨져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대구광역시 중구에는 이야기 꺼리가 많은 근대문화유적이 여러개 남아있어 골목길투어를 하는

재미가 쏠솔했다. 그 코스는 동산 선교사주택 ⇒ 3.1만세운동길 ⇒ 계산성당 ⇒ 이상화·서상돈고택 ⇒

성밖골목 ⇒ 제일교회 ⇒ 염매시장 ⇒ 종로 ⇒ 진골목으로 이어지는데 그 첫번째가 선교사 주택과

3.1운동 길이다.

 

 동산에 위치한 선교사 챔니스 주택

 3.1운동길 약도. 좌측 하단 엘디스호텔에서부터 빨간 점선을 따라 진행된다.

 

 큰길 옆에는 교과서에서 많이 보았던 3.1운동 사진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선교사 블레어주택

본 건물은 1910년경 미국인 선교사들이 블레어선교사의 주택으로 지은 집이다. 이 집은 동산위의 여러 주택 중 동산의 최남단에 위치한 붉은 벽돌쌓기 2층집 으로 남쪽은 경사지로 반지하실이 구성되어 있다.

 

평면구성은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이며, 1층은 서쪽에 현관으로 이어지는 베란다를 두고, 현관홀을 통하여 응접실,거실,계단실을 직접 연결하였으며,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식당,부엌 등을 배치하였다. 2층에는 구자형(口字形)의 계단 홀을 중심으로 3개의 침실과 욕실을 두었고 현관위의 베란다에는 썬룸(Sun Room)을 두었다. 외관은 기초와 지하실 부분을 콘크리트로 구축하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미식(美式)쌓기(3단길이, 1단마구리) 하였으며, 층간에는 벽돌로 톱니모양의 코니스(Cornice)를 들렸다. 창은 결원아치형에 목재오르내리창을 달고 밑인방을 벽돌 3단내쌓기로 하였다. 지붕은 박공면이 남북으로 향하는 것과 서향하는 것이 ㄱ자형으로 직교하며 동쪽과 서쪽으로 경사진 지붕면에는 쉐드형지붕으로 하였다. 건물의 남측과 서측에는 목조베란다가 설치되어 있고, 지붕 위에는 붉은벽돌을 쌓아 만든 굴뚝을 돌출시켰다. 건물 내부는 바닥이 장마루판이고 천정은 널판재를 대고 목재 반자돌림띠를 돌렸으며, 벽은 회반죽으로 마감하였다.

 

블레어주택 건축후 블레어,라이스선교사 등이 거주해 오던 것을 1981년 동산의료재단에서 인수하여 사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재 동산병원의 의사인 강진성 씨가 거주해 오면서 내부 마감재를 바꾸었으나 건물의 형태 및 구조는 당시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둥근조팝나무

 우리가 학교다닐때 배웠던 동무생각 노래비 (대구매일신문 인용)

박태준의 가곡 ‘동무생각’의 배경이 된 대구 중구 동산동의 ‘청라언덕’은 대구 근대문화의 중심지다. 그 아래로 3·1운동길, 선교 박물관, 의료 박물관, 90계단, 상화 고택, 약전 골목, 제일교회, 신명학교, 계산성당 등이 이어지면서 대구의 근대 예술가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곳이다. 1900년대 대구의 몽마르트로 불리는 이곳은 1899년 그 언덕 아래로 십자가 모양의 계산 성당이 한옥으로 축성된 후 시인 이상화, 화가 서동진과 이인성, 작곡가 박태준 등이 그 언덕을 오가며 한국 근대 예술의 꽃이 된 아름다운 작품들을 피워냈다.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푸른 담쟁이 덩굴'이란 뜻을 가진 청라언덕은 당시 박태준이 다니던 계성학교의 아담스관과 맥퍼슨관, 그리고 언덕에 위치한 동산의료원 선교사 사택들이 푸른 담쟁이덩굴로 휘감겨 있는 모습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동무생각'은 박태준(1900~1986)이 마산의 창신학교 교사로 근무할 적에 만들어진 곡으로 동료교사이던 이은상(1903~1982)이 글을 붙인 우리나라 대표적인 가곡이다. 박태준이 계성학교를 다닐 무렵 신명 여학교에 다니던 한 여학생을 사모했는데 내성적인 성격 탓에 끝내 고백하지 못했고, 세월이 흘러 박태준의 애틋한 첫사랑 이야기를 들은 이은상이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노래 제목이 ‘사우’(思友), 바로 ‘벗을 생각함’이라는 뜻의 ‘동무생각’이다. 수줍은 청년의 로맨스를 간직한 청라언덕의 ‘동무생각’은 당시 청소년들의 애창곡으로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일본 식민지 시절의 노래들이 슬프고 우울한 데 반해 따뜻하고 정감 넘치는 이 노래는 학교 창가나 유행가 외에는 마땅히 부를 게 없던 청소년들에게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청라언덕에 백합은 없었고 노랫말은 백합처럼 희디흰 얼굴의 그 여학생을 비유한 말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출생한 박태준은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터스칼럼대학, 웨스트민스터 음악대학을 거쳐 동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오빠 생각' '가을밤' '동무 생각' 등 150여 곡의 동요와 가곡을 작곡했다.

 

 담쟁이 덩굴도 볼만하지만 등나무와

 둥근조팝나무가 제철이다.

 

 선교사 챔니스주택

본 건물은 선교사들이 레이너 선교사의 주택으로 지은 집이다. 이 집은 스윗즈 주택의 남쪽 동산마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붉은 벽돌쌓기 2층 건물로 대구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있다.

 

평면구성은 남북으로 약간 긴 장방형으로 1층은 서쪽 중앙에 있는 주출입구에서 계단실이 있는 홀과 연결되고 이 홀을 중심으로 거실,서재,식당,부엌 등이 배치되어 있으며 2층에는 계단실을 중심 으로 남쪽과 서쪽에 침실을 배치하였다.

 

외관은 서측 정면 중앙부에 목조로 된 현관 포치(porch)를 두고, 동남쪽에는 목조베란다를 설치했으며, 벽면은 콘크리트기초 위에 붉은 벽돌이 미식쌓기하였다.

 

창은 결원 아치(arch)형에 목재 오르내리창을 달고 밑인방을 붉은벽돌 2단 내쌓기로 하였다. 지붕은 박공지붕에 네모난 석면슬레이트를 마름모꼴로 잇고 박공지붕의 남면과 북면 에는 쉐드(shed)형의 지붕을 두었으며, 지붕 위에는 붉은 벽돌로 쌓은 2개의 굴뚝을 돌출시켰다. 이 집은 건축후 레이너,챔니스,소텔등의 선교사들이 거주해 왔었다고 한다.

 외국인 선교사 묘지

 

 

청라언덕의 상징 담쟁이

 

 

 

 선교사스윗즈 주택. 현재는 의료선교박물관으로 쓰인다

  

1910년경 미국인 선교사들이 그들의 주택으로 지은 것으로 스위츠 선교사 등이 거주하였다. 평면구성은 남쪽 우측부에 현관으로 이어지는 베란다를 두고 현관홀을 통하여 거실과 응접실을 직접 연결하였으며 거실을 중심으로 침실, 계단실, 욕실, 부엌, 식당 등을 배치하였다.

 

외관은 안산암의 성돌로 바른층 쌓기의 기초를 하고 그 위에 붉은 벽돌을 4단 길이로 1단은 마구리로 쌓았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이은 박공지붕이었으나 후에 함석으로 개조하였다. 이 집은 지붕재료와 마감재료의 일부가 바뀌었지만 건물 전체의 형태 및 내부구조는 당시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동산의료원 개원 10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선교박물관으로 조성되었다

 

 

 

 100년이 넘었다는 사과나무

 

 

 가끔 이런 안내판도 보인다. 

현제명 나무로 명명된 이팝나무

 

이팝나무가 꽃을 피우기 직전이다.

 

지금까지가 3.1운동길의 초입이다. 이제 새로 지은 제일교회를 거쳐 100년이 넘은 계산동 성당으로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