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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종로구]추석연휴 마지막날 인사동 풍경

by 柔淡 2011. 9. 15.

수지집에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고가면 제일 자주 내리는곳이 종로2가와 3가 사이의

네거리다. 그동안 수도없이 이곳을 지나 다녔지만 사진을 찍어본것은 처음이다.

 

4일간의 추석연휴, 추석전 이틀은 비가오고, 추석날은 아버님 산소에 성묘도 가고

오랫만에 모인 누님네와 조카들 가족들이랑 지내느라 나들이 갈 생각을 못했다.

3일동안 계속 기름진 음식을 먹었더니 속이 더부륵하고 배둘레가 늘어난 느낌이다.

다행하게도 연휴 마직막 날은 비소식이 없어 일찌감치 서울구경을 나섰다.

 

경복궁을 오전에 둘러보고 인사동에 들러 점심을 먹고 삼청동을 갈까 하다가

혼자가면 뻘쭘할것 같아 나중에 데이지랑 함께 갈 생각으로 건너뛰고 인사동을

한바퀴둘러봤다. 인사동도 혼자 사진기를 들고 다니기에 뻘쭘하기는 마찬가지

였지만 나처럼 혼자 사진기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인사동의 소개 (인사동 관광안내소 http://insainfo.or.kr/)

지금의 인사동 거리는 종로 2가에서부터 인사동을 지나 관훈동 북쪽의 안국동 사거리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옛날의 인사동 길은 관훈동까지 올라가지 않고 종로 길에서 인사동 네거리 즉 태화관길과

만나는 곳까지였다. 옛날의 이 거리에는 고미술품과 고서적을 취급하는 상인과 화랑은 없었고 유명한

가구점과 병원 그리고 규모가 큰 전통 한옥이 많았다고 한다. 인사동의 명칭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관인방(寬仁坊, 방(坊)이라 함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수도의 행정구역 명칭의 하나로 성안의 일정한

구획을 일컫는 것이다)과 대사동(大寺洞)에서 가운데 글자인 인(仁)과 사(寺)를 따서 부른 것이라 한다.

조선왕조를 건립한 태조때부터 국가나 왕실에 공을 세운 사람을 공신으로 책록(冊祿)하기 위해서

그 업적을 조사하던 관청인 충훈부가 관훈동에 위치하고 있었다. 또한 도적을 경비하고 법에 금한

사치스런 잔치나 풍기문란 등을 단속하던 이문(里門)이란 관청이 있었다.
또한, 인사동지역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시대를 달리해 거주했었다. 대표적인 유학자인

이율곡, 효종때의 이완장군의 집터가 있으며 중종시절 왕도정치를 주장했던 유학자 조광조의 집이

관훈동에 자리잡고 있었다.
인사동의 가장 기념할 만한 역사적인 사건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항거한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의

시작지라는 점이다.
근래에 와서는 신구(新舊)작가들의 저마다 독특한 작품들을 언제나 선보이는 화랑들, 한집 건너

마주치게 되는 필방들, 희귀한 고서적들, 우리 조상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옛스럽고 소박한

민속공예품들, 그윽한 다향(茶香)과 가야금의 청아한 선율이 흘러나오는 전통찻집, 구수한 된장국과

농익은 동동주의 주점들로 가득 차 있다.

인사동 관광은 북인사 관광안내소나 남인사, 또는 조계사쪽에서 들어오는 인사동홍보관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가면 자원 봉사자들이 인사동이나 삼청동 지도를 주고 안내도 해준다.

외국인 통역을 해주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조계종쪽에서 들어오다 보이는 인사동 홍보관. 이런곳이 있는지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홍보관에서 내려오면 바로 쌈지길이다.

 

 이제 인사동 메인도로로 들어섰다.

 이번에 대학평가문제로 교수 전원이 사퇴한 추계예대 학생들이 서명운동을 하고있고

 

 

 

 길거리 다양한 노점 판매상들

 

 

 

 

 

 

 

 오설록

 

 연휴 마지막날, 화창한 날시에 수많은 인파가 몰려나왔다.

 

 모자장사가 제일 잘되는것처럼 보였다.

 꿀타래와 용수염앞에도 수많은 인파

 

 

 

 

 멀리 낙안읍성의 인절미까지 서울로 진출했다.

 드디어 남인사 소광장까지 왔다.

다음은 쌈짓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