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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구례]조선의 3대길지에 지어진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전범 - 운조루

by 柔淡 2015. 3. 16.

섬진강 어류생태관에서 나오 다시 구례군청방향으로 달리다가 들린곳이 지금은 매우 유명해진 운조루다.

 

2007년 2월말 이른 봄, 그때는 지금처럼 정보의 유통이 흔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관광지는 신문의 여행면을 보고 알았다.

데이지와 구례,하동, 섬진강, 남해를 거쳐 이틀동안 여행을 한적이 있는데 그로부터 8년만에 다시 운조루에 오게됐다.

8년이라는 시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세시로는 1주일 밖에 차이가 나지않아 그때의 모습그대로다.

 

운조루는 조선 영조 때 류이주()가 낙안군수로 있을 때 건축했다고 하는데, 큰사랑 대청 위 상량문의 기록은 1776년(영조 52)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규모나 구조가 당시 귀족 주택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현존하는 주요 부분은 사랑채와 안채이며, 그 밖에 행랑채 ·

사당 ·연당 등이 있다.

사랑채는 3채가 있는데, 큰사랑은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높이 약 1.2m의 축대 위에 있으며, 중문쪽이 온돌방, 가운데가 마루방, 서쪽

끝이 누마루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높이 약 60cm의 활석을 쌓아 올린 기단 위에 있으며, 초석은 큰 괴석을 사용하였다.

기둥은 전면 마루 끝에 선 것이 지름 약 2.3m의 둥근 기둥이며, 다른 것은 모두 모난 기둥이다. 안채 남동쪽에 사당이 있으며, 맞배지붕

홑처마집이다. 대문과 행랑채 남쪽 마당 건너에 연당이 있는데, 원래는 약 200평 되던 것이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다.

연당은 맞은편에 보이는 오봉산() 삼태봉()이 화산이어서 화기를 막기 위한 것으로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례 운조루 [求禮雲鳥樓] (두산백과)

 

운조루 전경

연당

유이주가 문경새재에서 잡았다는 호랑이의뼈

운조루의 굴뚝, 밥짓는 연기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굴뚝을 낮게 만들었다

 

운조루

 

마루 하나가 나무 한그루로 만들어졌다.

 

운조루의 2대자랑거리중 하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이다.

운조루에는 두 가지 큰 자랑거리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타인능해()’라는 글이 새겨진 큰 쌀독이다. ‘누구든 이 쌀독을 열 수 있다.’

는 뜻이며, 흉년이 들었을 때 굶주린 사람들에게 이 쌀독을 열어 구제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쌀독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는데 한 개의 구멍에 꽂혀있는 나무를 돌리면 다른 한 개의 구멍에서 쌀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기 꽂혀 있던 나무는 도둑을 맞았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례 운조루 [求禮 雲鳥樓] (한옥의 미, 2010.7.15, 경인문화사)

운조루 안채

여기도 낮은 굴뚝이다.

 

운조루의 두 번째 자랑거리이자 이 집만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굴뚝이다. 운조루에는 첨탑과 같이 하늘 높이 쌓아올린 멋들어진 굴뚝이 없다.

운조루의 굴뚝은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곳에, 눈에 잘 띄지도 않게 숨어 있다. 밥 짓는 연기가 멀리 퍼지는 것을 막고자 함이며,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이 이 집의 굴뚝 연기를 보면서 더욱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굴뚝이 높아야 연기가 잘 빠진다는 것을 집 주인이나 목수가 몰라서 굴뚝을 이처럼 낮게 만든 것이 아닌 것이다. 작은 것에도 배려를 아끼지 않던 우리 조상들의 아량이 운조루 굴뚝에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례 운조루 [求禮 雲鳥樓] (한옥의 미, 2010.7.15, 경인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