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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청송]99칸의 심부자댁, 송소고택

by 柔淡 2017. 12. 15.

주왕산 청솔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청송여행의 마지막 장소인 송소고택으로 간다.


송소고택은 청송심씨 문중의 고택으로 당시 얀반집에서 가장 크게 지을수 있던 크기인 99칸이나 된다


청송 심씨가 이곳에 자리잡은 것이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청송에 흩어져 사는 청송 심씨는 고려 말에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등을 돌려 두문동으로 들어간 조상의 뜻을 받들어 조선의 조정에 나아가지 않고 산골짜기에 은거한 심원부의 후손들

이라고 한다. 마을 인구의 60% 이상이 심씨들이다.

이 집은 조선 후기 영조 때 만석꾼으로 불린 심처사의 7대손 송소 심호택( )이 1880년 무렵에 지은 건물이다. 대문채와

큰사랑채·안채·사당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규모가 얼마나 크고 어마어마한지 ‘송소고택’이라는 명칭보다는 흔히 ‘심부자집’으로

부른다. 조선시대 민가 최대 규모인 아흔아홉 칸으로 지었다고 하며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3호로 지정되었다.

홍살이 설치된 솟을대문에는 엄나무 가지가 걸려 있어 잡귀를 물리치는 옛 믿음의 습속을 보여주어 눈길을 끈다. 마당 너른 터 한가운

데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 마당이 휑해 보이지 않도록 잘 가꿔놓았다. 요즈음에야 그다지 손질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처음 뜰을 꾸밀

때는 상당히 공을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그다지 크지 않은 나무들이 지키고 있어 안정감을 주면서도 안채로 통하는 문이

곧바로 들여다보이지 않으니, 바깥에서 들여다보는 시선을 적당히 가려주는 역할도 했음직하다.

큰사랑채는 집의 왼쪽에 자리하는데, 아흔아홉 칸 집답게 상당히 길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이다. 작은사랑채는 큰사랑채와는

반대편에 있는데 안채 건물과 이어져 있다.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의 영역을 구분짓고 안채에 드나드는 사람이 사랑채에서 눈에 띄지

말라고 마당 가운데에 헛담을 두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송소고택 (답사여행의 길잡이 10 - 경북북부, 초판 1997., 15쇄 2010., 돌베개)






송소고택으로 들어가는 길목 덕천마을






마을 안쪽으로 한참을 들어가야 송소고택이 나온다.




헛담
































이제 바로 옆에 있는 송정고택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