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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부석사 2 (07. 11. 03)

by 柔淡 2007. 11. 5.

개    요 : 부석사는 신라(新羅) 문무왕(文武王) 16년(676) 해동(海東) 화엄종(華嚴宗)의 종조(宗祖)인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왕명(王命)으로 창건(創建)한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이다.  대사가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高宗)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
           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道理)로 국론(國論)을 통일(統一)하여 내외(內外)의 시련을  극
           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절을 창건 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華嚴思想)의 발원지가 되
           었다.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한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혹은 흥교사
           (興敎寺)라 불리웠다. 1916년 해체보수 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에 의하면 고려(高麗)초기
           에 무량수전(無量壽殿)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恭愍王) 7년 (1358)적의  병화(兵火)를
           당하여 우왕 (禑王)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
           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석조기단 등이 있고,  고려시대유물인 무량
           수전(국보 제18호),조사당(국보제19호),소조여래좌상(국보제45호),조사당벽화(국보제46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모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소상(塑像)이다.무량수전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護法龍)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 문화재 - 무량수전(국보 제18호),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조사당(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국보46호),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
             삼층석탑(보물 제249호), 당간지주(보물제255호), 고려각판(보물 제735호)

 

 무량수전

 

 

 

 

 

무량수전은. . .

" . . .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 . 기둥의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 .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 .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어서서><최순우전집>)

 

" . . . 무량수전 건축의 아름다움은 외관보다도 내관에 더 잘 드러나 있다. 건물 안의 천장을 막지 않고, 모든 부재들을 노출시킴으로써 기둥, 들보, 서까래 등이 얼키얼키 엮임이 리듬을 연출하며 공간을 확대시켜주는 효과는 우리 목조건축의 큰 특징이다. 그래서 외관상으로는 별로 크지 않은 듯한 집도 내부에 들어서면 탁 트인 공간 속에 압도되는 스케일의 위용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무량수전은 특히나 예의 배흘림 기둥들이 훤칠하게 뻗어있어 눈맛이 사뭇 시원한데 결구방식은 아주 간결하여 강약의 리듬이 한눈에 들어온다. . .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은 그 건축의 아름다움보다도 무량수전이 내려다보고 있는 경관이 장관이다. 바로 이 장쾌한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무량수전을 여기에 건립한 것이며 앞마당 끝에 안양루를 세운 것도 이 경관을 바라보기 위함이다. 안양루에 오르면 발 아래로는 부석사 당우들이 낮게 내려앉아 마치도 저마다 독경을 하고 있는 듯한 자세인데, 저 멀리 산은 멀어지면서 태백산맥 연봉들이 남쪽으로 치달리는 산세가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이 웅대한 스케일, 태백산맥 전체가 무량수전의 앞마당인 것처럼 끌어안은 것이다. 이것은 현세에서 감지할 수 있는 극락의 장엄인지도 모른다. . .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2>(창작과 비평사)

 

석등

 

 

 선묘각

 3층석탑

 

 

 

 안양루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엎드려 모여 있는 경내 여러 건물들의 지붕과 멀리 펼쳐진 소백의 연봉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스라이 보이는 소백산맥의 산과 들이 마치 정원이라도 되듯 외부 공간은 확장되어 다가온다. 부석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이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문인들이 안양루에서 바라보는 소백의 장관을 시문으로 남겼고 그 현판들이 누각 내부에 걸려 있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안양루에서 바라본 소백, 태백산맥의 능선들 (아쉽게도 안양루 안쪽 누각에는 들어갈수 없다.)

 

 

 

 

 

 

 

 

 

 

 범종루

부석사에는 2개의 누각이 있는데 안양루와 범종각이다. 문의 성격을 겸한 안양루가 석축 위에 작고 날아갈 듯하게 지은 누각이라면 대석축단과 안양루 석축으로 구분되는 공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지반에 견고하게 버티고 선 안정감 있는 건물이다. 특히 이 범종각은 그 건물의 방향이 여느 건물과는 달리 측면으로 앉아있다. 건물의 지붕은 한쪽은 맞배지붕을 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다. 팔작지붕을 한 쪽이 정면을 향하고 있고 맞배지붕이 뒤쪽을 향하고 있는데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보면 왜 목수가 지붕을 그리했는지를 알수 있으며 그 지혜에 절로 감탄이 난다.


부석사가 소백산맥을 향하여 날아갈 듯이 앉아있는데 범종각이 정면을 향하고 있으면 건물이 전반적으로 무거워보인다. 따라서 범종각을 옆으로 앉혀놓고 뒷쪽을 맞배로 처리하여 건물이 전반적으로 비상하는 느낌을 주고 답답해 보이지 않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