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유산(고궁,사찰,기타)

경복궁 - 8 (08. 11. 02)

by 柔淡 2008. 11. 11.

경회루 일대

 

우리나라 지폐에도 나와있는 경회루는 경복궁에서 제일 유명한 건물중 하나이다.

경회루는 크기도 경복궁 건물들을 통틀어 근정전에 이어 두 번째로 크며 안팎의 장식도 꽤나 화려하다. 그러나 태조 연간에 경복궁을 지을 때는

그저 이름도 없는 작은 누각에 지나지 않았으나, 1412년(태종12)에 그 건물이 기울자, 이를 수리하면서 위치를 조금 서쪽으로 옮기고, 원래보다

크기도 크게 하였으며, 또 땅이 습한 것을 염려하여 둘레에 못을 만들었다. 이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태종은 종친과 대신들을 불러 함께 기뻐하며

경회루라는 이름을 지었다. '경회'란 왕과 신하가 덕으로써 서로 만난 것을 말한다.

경회루는 몇 차례 수리를 거치면서 원래 모습이 조금씩 변하게 된다. 1473년에서 4년(성종4~5) 무렵에 수리를 하였는데 그때 아래층 돌기둥에

용을 조각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용 조각은 남아있지 않고, 옛 일본의 사신이 칭찬하였던 글만 남아있다.

임진왜란의 와중에 궁궐이 왜군에 손에 불탈 때 함께 불타 없어지고 돌기둥만 남았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경회루는 고종4년(1867) 경복궁을을 중건하면서 다시 지은 것이다.

넓은 방형의 연못 속에 방형의 큰 섬 하나와 방형의 작은 두개의 섬을 만들고, 큰 섬 위에 경회루를 세웠다. 그리고 물과 큰 섬은 세 개의 돌다리로

연결하고 있다.

지금 경회루의 크기는 정면 30칸, 측면 5칸, 해서 35간 이나 된다. 이층 누마루집인데, 아래층은 돌기둥을 세우고 위층은 나무로 지었다. 지붕은 앞 뒤

지붕면이 높이 솟아오른 팔작지붕의 형태이다

 

 

 

 

 

 

 

 

 

 

 

 

 

 

 

 

 

 

 

 

 

 

 

 

 

 수정전

수정전은 경회루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수정전은 국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곳, 혹은 편전 등의 용도로 쓰였던 건물이다.

수정전은 얼핏 보기에는 대단한 구석이 눈에 띄지는 않으나 정면 10칸 측면4칸 충 40간인 건물의 규모로 보았을 때, 지금 남아있는 경복궁 내 전각 중

큰 규모의 건물에 속한다.
수정전은 땅바닥에서 어른 키보다 더 크게 기단을 쌓고 그 위에 건물을 지었다. 기단은 높게 한 의도는 위엄있게 보이려는 것과 지열을 차단하여 여름에

시원하게 하려는 데 있고, 냉방과 함께 난방도 대비되어 있다.

지금의 수정전은 고종 초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인 1876년(고종4년)에 지어진 것이다. 고종 초년에는 고종이 기거하는 연거지소로 쓰이기도 했다.

따라서 처음에는 내전 영역에 들어가는 건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가 고종 중반 1809년대의 전반, 우리 역사의 격변기에 여러 제도가 급하게

변개될 때는 군국기무처, 내각의 청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또한 수정전 주위 행각은
사정전·천추전 방향의 행각과 복도로 연결했음도 볼 수 있으나 일제시기에 들어와 일제는 수정전 주위의 행각을 모두

철거하고 만다.

현재 수정전은 수정전 건물과 월대만 남아 있지만, 190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에 의하면 수정전 주변이 행각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수정전 건물의 좌우측으로 다시 복도를 내어 수정전 주변 행각과 바로 연결했음을 알 수 있다. 수정전은 앞에 월대를 두고 정면 10간 측면 4간의

장방형평면을 이루고 있다.

 

 

 

경회루도 특별관람 신청을 해야만 들어갈수 있다. 

 

'문화유산(고궁,사찰,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덕궁 후원 - 1 (08. 11. 13 )   (0) 2008.11.14
경복궁 - 9 (08. 11. 02)  (0) 2008.11.11
경복궁 - 7 (08. 11. 02)  (0) 2008.11.11
경복궁 - 6 (08. 11. 02)  (0) 2008.11.11
경복궁 - 5 (08. 11. 02)  (0) 2008.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