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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제주

제주 2일차 -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1 (09. 04. 11)

by 柔淡 2009. 4. 17.

김영갑 갤러리는 성산포에서 숙소인 샤인빌로 가는 중간에 있다.

 

두모악 갤러리에서 발췌

 

제주사진만을 고집하는 댕기머리 김영갑

한 사내가 스무살 시절에 제주로 왔다. 그후 오랫동안 제주의 바람은, 오름은, 소리쳐 우는 제주바다는 이 사내를 자주 목격해야 했다. 그 사내는 ‘도 닦는 마음으로 10년만 보내자’고 제주 행을 결행한 터였는데, 10년을 훌쩍 지나 이제 그 사내의 나이가 마흔을 넘었다. 그럼에도 사내는 제주에 홀려, 필름에 미쳐 아직도 제주에서 떠돌고 있다. 제주사진만을 고집하는 댕기머리, 김영갑.

한 사내의 생을 저울에 달아보아 평균율에서 치우치거나 모자라면 우리는 기인이거나 아니면 천치라 부르길 꺼려하지 않는다. 또는 잘 쳐줘야 못난 사내밖에 안된다. 일상적인 삶의 행렬에 그를 세워놓았을 때 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순전히 편하기만 한, 평범한 사람들의 기준이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돌출의 혁명을 꿈꾸고 일탈의 자유로움을 사려 든다. 그것도 아주 값싸게, 아니면 신용카드 긁듯이 무부심코 . 그러나 마흔 나이를 훌쩍 넘긴 한 남자가 우리에게 외친다.

파도와 오름과 풀잎들, 벌레들과 번민과 증오,
그리고 너에 대한 지독한 그리움.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름으로 외로움을 처절히 세울 때,
내 비로소 자유와 예술의 등 굽은 몸뚱아리에 향유를 바를 수 있었노라고, 결국 제주도는 사랑이었다고,
소름 끼치는 그리움이라고 . . . . .

글 : 정희성


김영갑님의 두모악 편지

내게 있어 제주는, 제주의 사진은, 삶에 지치고 찌들은 인간을 위무하는 영혼의 쉼터입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사람들은 그 제주를 두고 천혜의 관광지라거나, 혹은 세계 제일의 청정지역이라고 얘기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의 제주일 뿐입니다. 칠색 띠로

치장하고도 바다는 여전히 겸손합니다. 그 바다에는 수천년을 이어온 제주인 특유의 끝질긴 생명력이 깃들어 있습니다. 고만고만한 오름에 올라,

드센 바람에 몸을 가누지 못하는 들풀이나 야생화 따위를 보며 느끼는 순응의 미학은 오로지 제주만의 것입니다. 돌서덕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무덤에서 그들은, 죽음이나 절망 따위가 아니라 삶에 대한 의욕과 희망을 건져냅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제주입니다.

그것을 찾고 싶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렇다 저렇다 단정지을 수 없는 제주만의 은은한 황홀을,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그 삽시간의

환상을 잡고 싶었습니다. 20여 년 세월을 미친 듯이 쏘다니며 안간힘을 쓴 것은 오로지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 일상의 평상심을

유지하기 위해, 이거다 싶을 때마다 그 황홀함을 붙잡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삶이라는 흐름 속에 마주해야 하는 기쁨이나 혹은 외로움 허무 따위 절망적인 감상까지 씻어줄 것 같은 황홀함은, 그야말로 삽시간에

끝이 나고 맙니다. 단 한번도 기다려주지 않고 그저 삶을 평화롭게 응시할 것을 주문합니다. 나는, 제주의 가공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본디

그대로의 그것을 붙잡으려 애씁니다.

그래서 그저 기다릴 뿐 입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나는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것이 내 곁에 오래도록 머물게 하기 위해

존재해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자유입니다.

 

 

 

저녁 다섯시가 넘어서인지 많이 어둡다.

 

  자목련

 

 

  

원래는 국민학교였던 건물을 개조해서 두모악을 만들었다. 

내부에서 촬여을 통제하지는 않았지만 내부는 두컷만 찍었다. 

 

정원의  멀꿀나무. 향기가 너무 좋앗다. 

 

 

 연초록의 새순이 꽃보다 예쁘다.

 

 

 철죽도 만개하고

 토우 옆의 제비꽃이 앙증맞다.

 

 

 

오후 6시가 페장시간이라 서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