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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아산 팸투어 - 충남1호 당림미술관 (09. 04. 18)

by 柔淡 2009. 4. 22.

맹씨행단을 둘러보고 두번째 간곳이 당림미술관이다.

 

당림 이종무 화백

당림 이종무화백은 191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우리나라 첫 서양화가인 고희동 화백을 사사한 뒤 1941년 동경동방미술학원을 졸업하고,

동경미술가협회 및 동광회전 등에 참가하기도 했다. 1955년부터 1966년까지 홍익대 미대 교수로 재직했으며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국전 초대 작가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국전에 연 4회 (1955년∼1958년) 특선, 대한민국 예술원상, 대한민국 문화훈장 등을 수상하며 1950년

이후 국내외에서 20회의 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열성적인 작품 활동으로 동시대의 미술문화를 위해 공로했다. 
 
노년기의 예술혼을 불사르던 지난 2003년 5월26일, 88세를 기념하는 미수전 준비의 하나로 서울출판사에서 화집을 논의하고 오던 중 미술관 앞

39번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하였다.
미술관 이름이기도 한 당림(堂林)은 이 화백의 아호. 당림의 당(堂)자는 둥글고 맛이 시며 껍질이 단단한 산사나무의 열매인 ‘아가위'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매사에 엄격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언제나 그림 속에 묻혀 산 이 화백의 인격이 아가위를 닮았다는 데 착안한 일중(一中) 김충선

선생의 작명이다.
 
작품 세계
 이종무화백의 작품세계는 “황토의식에 집약된 미의 순례”라는 압축된 표현처럼 흙에 대한 사랑이 묻어있다. 특히 말년의 그의 작품세계는 사심

없는 노경(老境)의 관조로서 자연을 수용하는가 하면 겸허한 심상(心象)의 투영으로서 정일한 자연을 표현하고 있다. 지리산의 산간마을을 황토

색의 기풍으로 그린 작품 ‘산간'이 대표적이다. 특히 <산> 시리즈는 산이 갖고 있는 무한한 신비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1975년부터 2003년 교통

사고로 사망 때까지 천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세계는 초년기의 사실적인 양식에서 장년기의 추상적인 변모, 그리고 노년에 또다시 구상으로 탈바꿈하는 등 3번에 걸친 편력을 거듭

했다. 1962년부터 1971년에 이르는 추상화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인물과 풍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캔버스와 이젤을 짊어지고 한국의 아름

다운 산천을 두루 다니는 그의 모습은 마음에 드는 주제를 찾아서 방황하는 순례자, 그것이었다. 인물화는 추운 겨울이나 풍경을 그릴 수 없는

여건일 때 실내에서 그린 작품들이다.  - 이경성(미술평론가)의 “黃土意識에 집약된 美의 탐구자”에서 발췌

 

당림미술관
 고(故) 당림 이종무 화백(1916~2003)이 1997년 충남 아산으로 귀향하여 선산에 설립한 충남1호 미술관이다. 이 화백의 예술세계 보존과 한국화단에

기여한 공로를 기념하고 고향인 아산에 문화예술을 전파하고 예술적 성취를 공유하기 위하여 1997년 6월11일에 개관하였다. 이 화백 작품 세계의

흐름과 유품이 함께 보존된 아틀리에 및 다양한 장르의 근 ․ 현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화백의 차남인 이경렬 관장이 현재 미술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 화백의 유작 150여점과 회화, 조각, 공예 등 1000여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현재 이들 소장품을 분기별로 교체하며 상설전과 기획전,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특별전 및 사회교육프로그램, 음악회 등을 개최하여

일반인의 문화 향유에 이바지하고 있다.
 
 더불어 당림미술관은 당림어린이미술학교를 개설하여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전시와 행사, 소장품과 연계된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연중실시하고

있다. 틀에 박힌 학습에서 벗어나 원리와 이해중심의 창의성 함양에 주력하며 미술문화에 대한 자연스런 접근과 이해를 돕기 위해 분야별 전문학예

연구사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여 체험교육을 통한 미술관 활성화에 몰입하고 있다.

 

미술관 전경 

 이경렬 관장님의 안내로 미술관으로 들어갔다.

 철마다 전시작품을 바꿔 놓는다.

 

 고 이종무 화백께서 작업실로 쓰셨던 그대로 보존중이다.

 

 

 

 

 

 

 

 

 야외 전시중인 조각

 

 

 

 

 

 

 

 

 

 

 여기도 봄꽃이 만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