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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호국과 차문화의 성지, 해남 두륜산 대흥사 2- 남원, 별원 (09. 09. 13)

by 柔淡 2009. 9. 28.

북원일대를 둘러 보았으니 다음은 남원, 별원 일대입니다.

 

『대둔사지』에서는 이 같은 절의 공간 구성을 크게 북원(北院)남원(南院) 의 2구역으로 구분하였다.
현재 북원에는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명부전, 응진전, 산신각, 침계루, 백설당, 청운당, 대향각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으며, 남원에는 천불전을 중심으로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그리고 종무소 등의 전각과 요사채들이 또 하나의 무리를 형성하여 배치되어 있다.

 

[남원구역] 법당으로 천불전과 동국선원이나 용화당 등 강원과 승방 몇채가 각각 돌담으로 구획되어 있다. 천불전의 지붕과 건물의 맵시가 매우 경쾌하며

정면3칸 분합문전체가 아름다운 꽃창살이다. 내부에는 경주에서 실어온 옥돌 불상 천개가 빽빽 하다.

[표 충 사]절에서는 흔하지 않은 유교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사명당 유정, 뇌묵당 처영 스님의 화상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전시관에는

서산대사의 가사와 발우, 친필선시, 신발, 선조가 내린 교지 등 유물과 정조가 내린 금병풍 등이 보관돼 있다. 별원구역으로 불린다.


[대광명전구역] 표충사 뒤편으로 300미터쯤 들어간 곳에 호젓하게 자리한 대광명전은 현재 선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남원 일대는 방문객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는곳이라서 많이 찍지 못햇습니다.

 

 가허루(駕虛褸)
남원(南院)의 출입문으로, 사찰의 중심에 있다. 휘어진 자연목으로 만든 문턱을 넘어 짧은 통로를 지나가면 천불전(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48호)을 비롯해

용화당·동국선원·봉향각·승방 등이 나온다.
단층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다. 건물 중앙은 통로로, 나머지 공간은 창고로 사용되고 있다. 정면 좌우측에는 돌벽을 쌓았으며,

뒷면은 판장문으로 단장하였다. ‘가허루(駕虛褸)’라는 현판 글씨는 비운의 명필 창암(蒼巖) 이삼만(李三晩, 1770~1845)이 썼다.  

 가허루

 동다실(東茶室)
무염지 앞에 차 문화의 산실이던 대흥사의 전통을 한껏 살려 청초하고도 짙은 차 향기를 풍기는 듯한 자태의 단아한 건물이다.

 

무염지(無染池)

초의선사가 조성한 무염지(無染池) '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한 곳‘ 너무나 아름다운 이름의 연못, 실용면에서는 '향로봉의 화기를 막는다'

는 풍수에 근거하고 있으며 실제로 화재시 물공급지의 역할도 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무염지의 전체적인 배치는 절묘한 굴곡모양 연못과 중심에 위치하지 않은 작은섬을 만들어 놓아 보는 위치에 따라 모양이 다르게 보이며, 특히 절에서

바라보면  마음'심 (心)자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대흥사 남원에 위치한 사리탑 입니다.

 좌측 의중당과 우측 보련각

의중당(義重堂)
표충사 일곽의 삼문인 호국문을 지나 맨 먼저 마주치는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건물이다. 의중당은 서산대사의 위국충정을 기리기 위해 당시

6군의 군수가 봄ㆍ가을로 표충사에 제사지낼 때 가지고 온 제물을 차리던 곳이다

 

 

보련각(표충사)
전라남도 기념물 제19호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왜적 격퇴에 앞장선 서산대사 모시는 사당으로 조선 현종 10년(1669년)에 건립되었다
서산대사는 어려서 고아로 자란 후, 출가하여 선가의 법을 체득하였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8도 16조 도총섭이 되어 유정, 처영과 함께 왜적을 물리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다.

이 건물은 조선 정조12년(1778년)에 대사의 높은 공을 기리기 위해 왕이 친히 사액을 내리고, 직접 정조대왕이 표충사라는 현판 끌씨까지 썼으며,

나라에서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혜를 받았다.
이후 관아의 보호를 받으면서 선암사, 송광사와 견줄만한 지위로 향상되었다.
한편, 서산대사의 유품인 금란가사, 발우와 정조 임금이 하사한 금병풍 등이 유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초의선사

 

해탈문을 들어서면 대흥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해탈문 우측길을 따라 걷다보면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가는 무염지가 반기고 정면에는 은은한 차향이 느껴지는 동다실이 있습니다.
동다실을 조금만 걸어가면 우측에 성보박물관이 보입니다.

지붕은 기와로 되어 있지만 어쩐지 현대식 건물 같은 느낌이 드는 성보박물관. 이곳은 3개관으로 분류됩니다.

여러분이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서 바로 보이는 것이 본관이며 우측이 서산관, 좌측이 초의관입니다.
 

대흥사 성보박물관은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서산대사 유물관’으로 건립되었습니다. 그 이후 1998년 좌우측에 각각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 2동을 지어 대흥사 성보박물관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현재 성보박물관에는 금란가사(金?袈裟)ㆍ옥발(玉鉢)ㆍ신발ㆍ수저(匙箸)ㆍ교지(敎旨) 등 서산대사의 유품류와, 대둔사지ㆍ대둔사사적ㆍ만일암지 등의

사적류, 탑산사 동종(보물 제88호)과 진불암대종 등의 범종류, 준제관음도ㆍ11면40비관음보살도ㆍ대양문 범왕탱 등의 불화류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산대사 유물관

  

 

북원의 대웅보전과 응진당 사이에 있던 범종각을 근래에 들어 천불전 가허루앞으로 새로이 지어 이전 하였다.

 

 범종각이 있던 자리에는 윤장대가 있다.

 

 

 

 

해탈문[解脫門]
부도밭을 지나 대흥사에 들어서면 천왕문 대신 해탈문이 나타난다.
불교의 우주관에 따르면 수미산 정상에 제석천왕이 다스리는 도리천이 있고, 그곳에 불이문(不二門) 즉 속계를 벗어나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이 서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건립된 대흥사 해탈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겹처마 맞배지붕을 올렸다. 내부에는 사자를 탄 문수동자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

있으며, 현판 ‘두륜산대흥사(頭輪山大興寺)’와 ‘해탈문(解脫門)’의 글씨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이 쓴 것이다.
 

외부에는 협칸 3면에 도륜(道倫) 박태석(朴泰錫)이 그린 ‘부모은중(父母恩重)’ㆍ‘염화신중(拈花神衆)’ㆍ‘점성가제도(占星家濟度)’ 등이 주제별로 장엄되어

있으며, 2002년 해탈문 건립 당시 단청과 함께 조성되었다.

 

대흥사 해탈문에는 특이하게 사천왕상이 없다. 사천왕상이 없는 이유는 북으로는 영암 월출산, 남으로는 송지 달마산, 동으로는 장흥 천관산, 서로는

화산 선은산이 대흥사를 감싸고 있기 때문에 풍수적으로 완벽한 형국을 취하고 있어 사천왕상이 세워져 있지 않다고 한다.

 

 

 코끼리를 탄 보현동자

 사자를 탄 문수동자

 해탈문을 나오면 이런 풍경이 펼쳐진다.

 

 해탈문 뒤쪽

  종무소

남원과 별원에는 볼거리가 많은데 일부 구역이 통제되고 시간도 부족해 찍을수 없었다.

 2009명량대첩축제가 09년10월9일 금요일부터 10월11일 일요일까지 해남군 우수영관광지와 진도군 녹진관광지 일원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