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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 안동 도산서원 3 (09. 11. 28)

by 柔淡 2009. 12. 1.

도산서원은 크게 서당구역과 서원구역으로 나누는데 다음은 서원구역을 둘러볼 차례다.

 

도산서원의 중심건물 

 도산서원전교당(陶山書院典敎堂) 보물 제210호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이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은 것을 1969년에 보수한 것이며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이고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간소하게 지은 건물로 선조가 서원에 내려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도산서원 195.0 × 46.0

도산서원의 강당인 전교당 전면에 게판되어 있다. 매끈함보다는 획의 중간에도 힘을 주는 삼절법으로 굴곡을 준 것이 현대의 서체를

보는 것 같은 해서체로 석봉 한호가 선조의 명을 받고 어전에서 썼다고 전한다. 만력 3년 6월이라는 연호가 있다.

한석봉이 이글을 선조 앞에서 썼는데 아무리 명필이라도 임금님 앞에서 쓰면 긴장할것 같으니 院,書,山, 陶라고 거꾸로 쓰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전교당』 152.0 × 46.0

해서이나 굴곡을 잘 이용하여 단단하면서 부드럽고 강한면이 보인다.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늘 지켜야 할 가르침 또는 가르침을 담당한다는
뜻이다.

 『한존재』 130.0 × 46.0

굵고 가늘고 날카롭고 강인함이 함께 있어 날렵하면서도 안정된 해서체이다. 전교당 서편에 있는 온돌방의 이름으로 사악함을 막고
본성을 보존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강약이 어우러져 있으면서 결코 가볍지 않은 해서체이다. 도산서원의 서재(西齋)로 홍의는 마음이 넓고 뜻이 굳셈을 뜻한다. 『논어』의
‘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에서 취하였다.

 박약재 131.0 × 44.0

강하면서 아름답고 묵직함이 함께 있는 해서체이다. 도산서원의 동재(東齋)로 『논어』의 ‘子曰 君子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弗畔矣夫
(군자는 글을 넓게 배우며 요약하며 행(行)하기를 예(禮)로서 하면 또한 위반됨이 없을 것이다)’에서 따온 것이다.

 

 밤에 소나무 관솔을 피어 불을 밝히는 석대

 

 

 상덕사(尙德祠)-보물 제211호 (퇴계의 위패를 모신 사당)
도산서원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상덕사를 드나드는 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은 상덕사를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앞면 기둥은 계단 높낮이때문에

다른 기둥보다 길이가 길다. 정문 양옆으로 사당 주위를 둘렀던 토담은 1969년 보수공사 때 돌담장으로 모두 바꾸었다.

간결하고 매우 검소하게 지은 전통 깊은 조선시대 건축물로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 (평소엔 들어가 볼수 없다)

 장판각. 서원의 출판소로 목판을 보관 하는곳.

 

 

 상덕사 입구의 문양

 

 

 전사청

 서원의 마당.

 상고직사.

하고직사가 서당의 유생들을 위한 관리 시설이라면 상고직사는 서원을 관리하기 위한 건물이다.

 

 

 

 옥진각.퇴계선생의 유물 전시관

  옥진각 130.0 × 41.0

조금은 가냘퍼 보이는 행서체로 그저 부담없이 편안하다. 옥으로 음악을 거두어 들인다는 뜻의 옥진은 집대성 하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원 입구를 안쪽에서..

 절우사

 

 도산서원 전경

 

 열정

 

 1, 500년대 후반에 자녀교육을 위해 이렇게 서원을 세우고 교육에 임했던 우리조상들의 교육열이 지금까지 이어내려오고 있다.

그런 정신이 좋은면만 계승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원의 폐단으로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이 내려졌을때 안동에서는 이곳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두곳만 남아 있을수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안동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곳이다.

퇴계선생의 종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설사님이 해주셨는데 개인적인 이야기라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