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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한국 정신문화의 성지, 안동 도산서원 2 (09. 11. 28)

by 柔淡 2009. 12. 1.

도산서원 관리사무소 주차장에서 오른족으로 낙동강을 끼고 5분정도 걸어가면 도산서원의 전경이 나타난다.

전라도나 경상도의 고택, 정자를 보면 대체로 산자수명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안동에서도 버스로 40여분을 달려서온 이 골짜기에 500여년 전에 이런 서원을 건립했다는게 참으로 대단하다.

 

도산서원 소개 (도산서원 홈페이지 발췌)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의 건축물들은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졌으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면으로 볼 때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선생이 몸소 거처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건립되어 추증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에 설립되었다. 퇴계선생이 낙향 후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을 위해 지었으며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퇴계선생이 직접 설계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돌아가시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보물 제211호)에 모실 것을 결정하였다.
2년 뒤 지방 유림의 공의로 사당을 지어 위패를 봉안하였고, 전교당(보물 제210호)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의 편액을 하사 받음으로써 사액(賜額)서원으로서 영남유학의 총 본산이 되었다.
1615년(광해군 7), 사림이 월천(月川) 조목(趙穆,1524-1606) 선생을 종향(從享)했다.

 

도산서원은 주교육시설을 중심으로 배향공간과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전체 교육시설은 출입문인 진도문(進道門)과 중앙의

전교당(典敎堂) 을 기준으로 좌.우 대칭으로 배열되어 있다. 동.서로 나누어진 광명실(光明室)은 책을 보관하는 서고로서 오늘날의

도서관에 해당한다. 동.서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공부하는 건물이다.

 

동편 도산서당 건물을 ‘박약재(博約齋)’와 서편 건물을 ‘홍의재(弘毅齋)’라 하는데 안마당을 중심으로 서로 마주보고 있다. 중앙의

전교당은 강학공간과 원장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재 뒤편으로는 책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板閣)이 자리하고 있다.

배향공간인 사당 건축물로는 위패를 모셔놓은 상덕사(尙德祠)와 각종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典祀廳)이 있는데 삼문을 경계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부속건물로는 서원을 운영하고 관리하는 상고직사(上庫直舍)가 있으며 이는 홍의재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서원 입구 왼쪽에는 1970년 설립된 유물전시관 ‘옥진각(玉振閣)’이 있는데, 퇴계선생이 직접 사용했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1969년 본 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이 사적 170호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을 진행하였으며

우리나라 유학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 되었다.
1977년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고 관리운영조례를 제정 공포한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경 

 입구

 

 

 

 

 농운정사 25.0 × 54.0

해서이나 예서의 멋도 함께 보이는 것으로 반듯함이 돋보인다. 농운정사는 문도들이 거처하고 강실(講室)로
사용했던 곳이다. 농운이란 고개 위에 걸려있는 구름을 뜻하는 말이다.
청렴한 선비가 되라는 교훈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관란헌 51.0 × 20.0

얌전하고 예쁘며 부담없이 편안한 해서. 농운정사의 서쪽에 있는 마루에 걸린 현판으로 물을 보는데는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결을 살핀다는 맹자의 구절에서 이름을 취하였다.

 시습재 51.0 × 21.0

무척이나 편안하고 쉽게 그래서 안정하게 보이는 해서체이다.
농운정사의 동쪽에 있는 마루에 게첨된 현판으로 『논어』의 ‘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서 그 뜻을 취하였다.

 농운정사 툇마루에서 내려다 본 전경, 에전에는 담이 낮아 멋진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금송은 우리나라 원산이 아니라서 말이 많았는데 이것도 하나의 역사라고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단다.

 

 몽천

 

 도산서당 22.0 × 54.0

편안하고 쉽게 쓴 해서이나 정통성을 벗어나 전서의 느낌도 있다.
도산은 옛날 이곳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암서헌 49.0 × 22.0

쓰기보다는 그린듯한 그러나 부담이 없는 예서체이다.
도산서당 건물 안에 있는 마루 이름으로 주자(朱子)의 『운곡시(雲谷詩)』 가운데 ‘自信久未能 巖栖翼微效(학문에 자신이
오래토록 없었는데 바위에 깃들어서 작은 효험을 바란다)’는 뜻이다.

 정우당

 

 

 하고직사. 서당의 건물을 관리하고 유생들의 식사를 제공해 주던 건물

 

 매화원.

퇴계선생은 매화나무를 무척이나 좋아 하셨는데 단양군수 시절 두향이라는 기생과 관련된 매화화분에 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픽션인데 정비석 자가의 명기열전에 나와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으며

두향의 묘는 단양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면 선장들이 안내하는 이야기의 단골메뉴이다. 

 

 

서원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진도문 

『진도문』 133.0 × 45.0

강하면서 날카로운 것이 황산곡의 형체를 띄고 있는 해서이다.
도산서당에서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학문을 하여 도(道)로 나아간다는 뜻이다. 서원의 입구. 서원과 부속시설을 구분하는 역할이 있다.

 

 

 동광명

 서광명

 

 광명실 112.0 × 44.0

나지막하고 착 가라앉아 편안함이 느껴지는 해서로 퇴계의 친필이다. 서원의 장서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