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준이 좋아지고 웰빙과 옛것을 찾는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가장 각광을 받고있는 것중의 하나가 한옥이다.
서울 북촌의 한옥마을, 안동 하회마을에 있는 종가와 고택,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등 전국적으로 이름난 한옥마을들이 많고
그곳들을 몇번씩 가봤지만 주민들이 거주하면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곳은 전주 한옥마을이 가장 실질적인 한옥마을이라
할수있다. 지난봄에도 1박2일 동안 둘러보았는데 이번에도 1박2일 동안 한옥생활 체험관에 머무르면서 다시한번 둘러 보았다.
전주한옥마을의 유래 (한옥마을 홈피 인용 http://tour.jeonju.go.kr/index.sko?menuCd=AA06000000000)
대거 전주에 들어오게 된 일본인들이 처음 거주하게 된 곳은 서문 밖, 지금의 다가동 근처의 전주천변이었다. 서문 밖은 주로 천민이나
상인들의 거주지역으로 당시 성안과 성밖은 엄연한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 성곽은 계급의 차이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존재했던 것이다.
양곡수송을 위해 전군가도(全郡街道)가 개설(1907년)되면서 성곽의 서반부가 강제 철거 되었고, 1911년말 성곽 동반부가 남문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됨으로써 전주부성의 자취는 사라졌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성안으로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으며, 실제로 서문 근처에서 행상을 하던 일본인들이 다가동과 중앙동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1934년까지 3차에 걸친 시구개정(市區改正)에 의하여 전주의 거리가 격자화되고 상권이 형성되면서, 서문일대에서만
번성하던 일본 상인들이 전주 최대의 상권을 차지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은 1945년까지 지속되었다.
1930년을 전후로 일본인들의 세력확장에 대한 반발로 한국인들은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는 일본인 주택에
대한 대립의식과 민족적 자긍심의 발로였다. 1930년대에 형성된 교동, 풍남동의 한옥군은 일본식과 대조되고 화산동의 양풍(洋風) 선교사촌과
학교, 교회당 등과 어울려 기묘한 도시색을 연출하게 되었다. 오목대에서 바라보면 팔작지붕의 휘영청 늘어진 곡선의 용마루가 즐비한 명물이
바로 교동, 풍남동의 한옥마을인 것이다.
비빔밥축제기간이라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다양한 전시와 체험이 있고
동학혁명 기념관도 보인다.
이 마을의 역사를 지켜봐온 은행나무
곳곳에 쉼터도 있고
경기전의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가고 있다.
유구한 역사의 전동성당 야경
다음날 엔 비가왔는데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어 더욱 정겨운 골목길
광광안내소에서 신청하면 단 한명이라도 시간대마다 해설을 해준다.
시냇물도 흐르게 만들어 놓았다.
고풍스러운 커피점
온갖 문회시설도있다.
여기까지는 그냥 일반적인 겉모습이다.
다음편에서는 한옥체험을 할수있는 집들을 소개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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