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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단양]도자기의 역사를 한눈에 볼수있는 방곡도예전시관 1 -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

by 柔淡 2011. 6. 6.

다음은 조선시대부터 근대까지이다.

 

조선을 대표하는 도자기로는 분청사기와 백자가 있다. 분청사기는 15`16세기 조선 전기에 걸쳐 만들었던

그릇으로 그 뿌리는 고려말에 만들었던 질 낮은 상감 청자에 있다.

그러나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의 세련된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지만 1467~1468년경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되어 백자생산에 중점을 두면서 지방가마도 분청사기를 제작할 필요성이 줄어들어

결국에는 분청에서 자기로 바꾸게 된다. 절제와 순수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백자는 순백자, 상감백자, 철화백자,

동화백자등 다양한 종류로 만들어져 조선 도자 문화를 활짝 꽃피우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 자기에서 막사발도 중요한 부분이다.

막사발은 '막사기'로도 불리며, 우리 선조들이 밥그릇, 국그릇, 막걸리 사발 등 생활그릇으로 쓰이던 것이다.   

막사발은 주로 서민과 머슴들에게 쓰였던 그릇으로 대접과 같은 모양을 하고있으며, 벽면은 곧게 솟아 올라있고

아가리는 넓게 바지라진 형태를 갖고 있다. 살이 두껍고 겉 표면이 부드럽지 않으며 까칠한 것이 특징이다.

우리 땅에서 채취된 황토로 빚어낸 막사발은 밝은색의 장식이 없는 자연스러움이 담긴 사치스럽지 않은 그릇이다.

막사발을 만든 사기장들은 대를 이어 평생 도자기를 만들었으나 그 생활이 무척 가난하였고 무명()으로

평생 무념()속에서 자연과 같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그 특징이

막사발에 배어 꾸밈없는 아름다움으로 드러났다

조선시대 막사발의 종류로는 김해 두동리 사발, 하동 백견리 사발, 고성 사발, 단성 우리사발 등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막사발은 일본으로 건너가 찻잔으로 사용하였으며, 수수하고 꾸밈없는 자연미를 갖춘 생활용품으로

각광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도공이 만드는 막사발은 보물(이도다완 : )이 되어 일본인들이 도자기 전쟁이라

부르는 한일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일본인들이 데려간 도공들은 일본 도자기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출처] 막사발 | 네이버 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