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대전·세종·충청

[서천]일제수탈의 전초기지였던 아픈 역사를 뒤로하고 재도약을 준비중인 장항

by 柔淡 2011. 6. 30.

우리나이 세대의 사람들은 서천군은 몰라도 장항제련소는 다들 알고있다.

초, 중, 고등학교에서 장항제련소에 대해서 한두번식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거에 그렇게 활기차던 장항이 지금은 조용한 소읍으로 역사의 한페이지를 되새기면서

쓸쓸하게 졸고있는것 같다. 역사에서 흥망성쇠는 늘 있는 이야기 거리지만 실제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수 없을것이다.

 

그러면 장항의 역사에 대해 되돌아 보자 

 

간척지공사 이 후 장항은 갈매기 나르는 조용한 포구가 아니었다. 철마의 기적 소리가 하늘을 찔렀고

공장에서 내뿜는 시커먼 연기는 하늘을 뒤덮었으며 또한 한가한 목선이나 드나들던 포구에는 검은

철선이 항구에 가로놓여 뭉게뭉게 연기를 내뿜어 댔다. 장항은 일제의 수탈 기지로 탄생하게 되었던 것이다.

일제는 1899년 개항한 군산 항을 통하여 쌀을 유출하려면 시간과 임금소요가 많게 되자 장항을 개발하여

그 수탈 기지로 삼게 된 것이다.

 

1935년 2월에는 금을 생산하는 ‘장항 제련소’가 전망산 돌산 위에 높이 100m의 굴뚝을 세우기 위해서

돌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고 벌 땅에 용지를 조성하기 시작하여 1935년까지 필요한 주요공장과 용광로

설비가 완료되었다. 그후 1936년 6월 점화를 시작하였다. 한편 항구 건설에 있어서는 장항 항은

후망산의 돌을 운반하여 수축공사를 마무리하고 1937년 완성한 후 1938년 장항읍으로 승격되었다.

1918년 일본에서 쌀값이 폭등하여 일본 각처에서 쌀 소동이 일어났다. 이로 인하여 일본에서는 조선

쌀이 요구되었다. 총독부에서는 1920년 조선인들에게 토지를 개량하게 하는 한편, 경종법(耕種法; 작

물의 선택 배치 및 심는 순서를 정해 줌)을 만들어 쌀의 증산을 도모하여 한국쌀을 일본으로 유출하기에

이르고 충남일대와 경기일대 미곡을 장항선 철도를 이용하여 장항에 운송하고 이곳에서 도정하여

장항 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였던 것이다.

 

일제는 쌀 수탈에 그치지 않고 장항을 광업자원 수탈의 기지로 삼았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는 회사령을

철폐하고 회사의 설립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변경하였다. 이것은 성장하여 가는 일본의 자본주의가 제 1차

대전의 전쟁 경기를 지나고 난 뒤에 유리한 자본투자의 시장을 조선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인데 허가제의

까다로운 절차를 없애고 손쉽게 회사를 설립하도록 신고제로 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조선에서 막대한

공업 자원을 개발하고 비약적인 광업 발전을 꾀하였거니와 특히 금광(金鑛)에 중점을 두었다.

일본이 금(金)생산에 중점을 둔 것은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 그것은 1937년 7월에 일본은 중국

대륙을 침략하였거니와 그 침략을 앞두고 전쟁에 필요로 하는 석유, 제철, 공작 기계 등을 미국 등 여러

나라로부터 수입하는데 금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세워진 공장이 1935년 기공한 장항 제련소이다. 여기에서는 주로 금을 생산하게 되었던

것이다. 1930년대 장항은 서천의 경제적 중심지로 변모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국각지에서 사람들이

일자리를 찿아 모여들기 시작하여 신도시가 형성 되었다.

 

1920년대 서천은 농업 중심의 경제권에서 벗어나 장항지역의 항만과 제련산업을 통한 산업도시이며

미곡의 집산지로 지역경제의 번창기를 맞이 하였으며 해방 후인 1962년 l월 29일 지정항으로 지정되었고,

1964년 7월 11일 개항장으로 선포되어 충남 유일의 1종항구로 분류되어 서천지역 경제의 견인차역할을 담당

해 왔으나 1993년 금강하구둑의 완공으로 장항, 군산을 오고가던 그 많던 승객이 하나 둘 끊기기 시작하여

조용한 도시로 변화되었다

더구나 지금은  서천에서 군산에 이르는 다리가 공사중에 있는데 그다리가 완공되면 장항은 그냥 지나가는

이름없는 곳이 되고 말기에 지역주민들의 걱정은 더욱 깊어간다.

 

한편 장항항은 사실상 군산항과 동일한 항계선 내에 있으나 완전히 분리된 상항이으로 8000t급 선박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고 주요시설은 접안시설인 물양장 295 m, 부잔교 2기와 호안시설 2,454 m, 도류제 549 m가 있다.

취급화물은 연간 34만 5000 t으로 그 중 양곡 ·무연탄 ·유연탄 ·인광석 ·기타 광석 등이 약 28만t 입하되었으며,

수출품목은 비료만 취급하고, 나머지는 연안화물로 취급한다. 연안에서는 갈치가 많이 잡힌다

 

그런 장항에 지금 국립생태원이 건립되고 있는것이다.

 

국립생태원은 기후변화에 따른 생태계 변화 연구 및 생물다양성 보전 연구를 추진은 물론이고, 다양한 생태계 모델 전시를 통한 대국민 생태교육 기능을 수행하며, 녹색성장을 통한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국가 통합 생태연구 기관을 목표로 총사업비 약 3,400억원을 투입해 충남 서천에 건설 중인 기관이다.

현재 2012년 말 준공을 목표로 건설 중이며, 전체 사업부지 99만8000㎡에, 주요 시설로는 연구를 위한 시설인 생태연구동과 멸종위기종연구동, 교육을 위한 시설인 생태교육동과 방문자 숙소, 전시시설인 생태체험관과 방문자 센터를 건설 중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생태체험관은 국립생태원의 핵심 전시 시설로서 열대, 아열대, 지중해, 온대 및 극지의 5개 기후대별 온실과 기획 및 상설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구의 다양한 생태계를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생태 전시 간으로 조성될 계획이다. 그밖에 야외 공간에 온대 숲, 한반도 숲, 습지체험시설 등을 조성하고 있다.

당초 서천지역은 갯벌을 매립하고 국가 장항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이 수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갯벌의 생태적 중요성이 날로 부각되어 갯벌을 보전하면서도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새로운 대안 제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국립생태원 건립은 서천지역과 관계부처가 2007년 6월 장항산업 단지 건설 대신 국립생태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및

내륙산업 단지를 대안사업으로 추진키로 합의해 시작된 사업이다.

 

전화위복이라고 갯벌을 메워 산업단지를 조성하는것 보다는 환경보전과 생태가 중시되는 21세기에 국립생태원이 세워지므로서 생태환경도시로 발전해 나가는게 훨씬 더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장항항은 옛날의 영화를 뒤로 하고 점점더 갯벌이 쌓여서 항구가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것 같다.

사진에서 보다시피 물이 조금만 빠지면 바로 갯벌이 드러난다. 

 

 

 

군산과 장항을 이어주는 다리가 공사중인데

강건너는 군산이다.

멀리 장항제련소의 굴뚝이 보인다.

 

 

 

 

 

여기는 장항쪽의 소공원

 

 

금강 하구둑

금강하구둑을 막지 않았으면 신성리 갈대밭이 여기까지 연결되지 않았을까?

강건너 군산

새만금, 공단 등으로 외형적인 발전은 무척이나 앞서있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연을 살리면서 개발하는 장항쪽의 발전 방식이 후손들에게는 훨씬더 축복이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