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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울진]조선시대에도 울릉도,독도를 확실하게 통제했다는 증거, 대풍헌

by 柔淡 2012. 5. 2.

우리나라 최대의 생태경관 보전지역인 굴구지마을에서 나와 다음으로 간곳은 조선시대 중앙정부에서

울릉도와 독도를 점검하기위해 파견하는 수토사들이 울르도로 가기위해 바람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는 대풍헌이라는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대풍헌은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구산리 마을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 건물은

동사(洞舍)였으나, 조선시대 어느 때부턴가 구산항에서 울릉도(독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

(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一자형 팔작집으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51년(조선 철종 2)

중수하고 ‘대풍헌(待風軒)’이란 현판을 걸었으며, 이후 몇 차례 보수과정을 거쳐 여러 부분이 개조·변형되어

2010년 해체·복원하였다.

또한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울진 대풍헌 소장 문서(문화재자료 제511호)’는 삼척진영 사또와 월송 만호가

3년에 한 번씩 울릉도를 수토할 때 평해 구산항에서 출발한다는 것과 수토사 일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각종 경비를 전담했던 구산동민들의 요청에 따라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관아(삼척부)에서 결정

해준 내용의 「완문(完文)」(1871년)과 「수토절목(搜討節目)」(1883년)이다.

 

그동안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조선왕조실록』등 문헌기록에 울릉도에 수토사를 파견했다는 기사가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이 문서와 대풍헌에 의해 19세기에도 여전히 조선 정부가 울릉도(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였으며, 정기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려고 순찰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풍헌은 조선시대 울릉도(독도)를 순찰하던 수토사들이 머문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며,

특히 문서들은 조선시대 국가가 구산 동민에게 보낸 관찬문서로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삼척 진장과

월송 만호가 번갈아 가며 울릉도(독도)를 수토한 내용을 상세히 증명해주는 아주 귀중한 사료이다.

 

 대풍헌 전경

 

 

 기성구산동사라는 현판

 바람을 기다린다는 뜻의 대풍헌

 

 

 구산항의 유채꽃

 구산항 바로 안족에 있다.

 울진에 대풍헌이 있다면 울릉도에는 대풍감이라는 지명이 있다. 여기선 울진 대풍과 반대로 울릉도에서 본토로 가기위한 바람을 기다렸다는곳이다.

 

울릉도에는 배를 만들기에 알맞은 나무가 많이 있어 낡은 배를 타고 여기에 와서는 새 배를 만들어 돛을 높이 달고 바위 구멍에 닻줄을 매어 놓고

본토 쪽으로 불어대는 세찬 바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서 바위 이름을 대풍감(待風坎)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기다리던 배는 마침

바람이 불어 돛이 휘어질 듯하면 도끼로 닻줄을 끊어 한달음에 본토까지 갔다고 한다.

 

태하리 북서쪽 해변 바다 끝에 있으며, 태하리에서 현포리로 배를 타고 가면 등대가 있는 부근 해중에 하늘로 치솟고 있는 산에 밧줄을 꿰어서 맬

수 있을 만한 구멍이 있다. 등성이에는 태하등대가 있고, 그 주변에 있는 향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울릉읍 도동 선착장 부근의 소

공원에서 천부행 버스를 타고 사동·통구미·남양리·남서리를 지나면 태하리에 도착한다. 도동에서 태하리까지 소요 시간은 약 40여분 정도 걸린다.

 

울진 대풍허네 가기전 잠시 머물렀던 울진곷게 상징물. 비바람은 그칠줄 모르고 계속 몰아치는데 그 와중에도 낚시를 드리운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