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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대구]4~5세기에 축조된 특이한 무덤이 한곳에 모여있는 불로동 고분군

by 柔淡 2012. 5. 16.

옻골마을에서 나와 다음은 불로동 고분군으로 간다. 대구에 여러번 왔었지만 여기는 처음 와본다.

 

불로동 화훼단지를 지나 경부 고속도로를 지나기 전 우측에 고분군 안내 표시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따라

주택가 골목으로 400m쯤 올라가면 299,746㎡(90,673평)의 광활한 산 일대에 걸쳐 국가 지정 문화재 사적

제 262호로 1978년 6월 23일 경남 김해 예안리 고분과 함께 가장 일찍 지정된 불로동 고분군이 있다.

 

입구의 잘 정비된 봉분 몇 기를 지나 50여m쯤 산책로를 따라 언덕 위에 올라서면 웅장하고 위엄서린 경주의

왕릉과는 또 다른 이색적인 느낌이 드는 대·소고분이 나타난다.

탁 트인 능선따라 고분군이 산 봉우리로 착각이 들 정도로 볼록볼록 솟아있다.

이 고분군은 팔공산의 지맥이 길게 뻗어 내려와 경부 고속도로에 의해 잘리운 일대의 능선으로 볼로동 및 봉무동,

도동의 구릉에 분포하여 있는 봉토분으로 현재 211기의 고분이 밀집되있다.

 

불로동 고분군은 1938년 고분 2기를 조사하여 '해안면 고분'으로 불리워졌다. 그 뒤 1963년 12월과 이듬해 1월

두차례에 걸쳐 경북대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2기를 추가 조사한 뒤, 해안면 고분을 포함하여 '대구 불로동 고분군'

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해안면 1호분의 경우 벽면의 축조에는 산석(山石)을 이용하였으며 바닥은 생토 위에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바로 시신을 올려놓은 듯하며 부장품으로는 토기류와 금동제의 운주편(運柱片)이 출토되었다.

대체적으로 학술적 발굴 조사에 의하면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4벽을 쌓고 판석으로 덮은 직사각형의 수혈식

석곽분(竪穴式石槨墳 :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밝혀졌으며, 금제 혹은 금동제 장신구와 철도끼, 철제꺽쇠, 마구류

그리고 무늬가 새겨진 토기 등 많은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 고분군은 대개 4-5세기경의 삼국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고분의 직경은 15-20m 높이 4m 내외의 봉분

으로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토착지배세력의 집단 묘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군 중 가장 외형적인 형태가 잘 갖추어져 있다.

이를 통해 겉모양이나마 고대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으며, 대구 분지의 옛모습과 낙동강 동쪽 연안의 석곽분군

(石槨墳群)으로 원분포 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유적으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4~5세기경부터 이정도 크기의 무덤이 수백개 있었다니 대구는 그때부터 이지역의 중심지 였었나보다 

 

 

 

 

 

 

 

 

 

 

 

 

 

 

 

 

 

 

 

 

 

이제 한방축제장으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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