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관을 돌아보고 나와 오른쪽에 있는 생가부터 둘러본다.
1973년 7월 10일 경기유형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고종황제(1863~1907)의 비 명성황후 민씨
(1851~1895)가 태어나서 8세까지 살던 집으로 1687년(숙종 13)에 부원군 민유중(閔維重)의 묘막(墓幕)
으로 건립되었다.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 뿐인데 1975년과 1976년에 한번 중수하였다가 1996년에 다시 수리
하면서 행랑과 사랑, 별당 등을 함께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넓은 바깥마당에서 솟을대문을 지나 ㅡ자형 행랑채가 있고,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ㅁ자형을 이루며, 그 옆으로 독립된 ㅡ자형 별당이 있다. 안채는 14칸짜리 민도리집이고
8칸짜리 팔작지붕인 본채 한쪽에 6칸짜리 맞배지붕 날개채가 붙어 ㄱ자형을 이룬다.
본채는 전면에 툇간이 있는 5량구조로 안방(2칸)과 대청(4칸), 건넌방(1칸 반), 부엌(2칸)이 일자로 배치
되어 있고 날개채는 3량구조로 안방 앞쪽에서 꺽어져 방(1칸 반), 부엌(3칸), 광(1칸 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리 크지 않은 재목을 사용한 아담한 규모이지만 부재의 형태와 결구법 등에서 조선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 옆에는 5대조인 민유중의 비와 왕비가 탄생한 지역을 기념하는 탄강구리비가 있다.
1895년 8월 명성황후는 경복궁안의 별궁인 건청궁에서 일본영사의 사주를 받은 일본인 낭인들의 칼에 살해되고 시신이 불살라지는 전무후무한
사건의 희생자가 되는데 건청궁 내에서도 옥호루란 거처에서 시해되었다
고종이 거처하던 장안루
명성황후가 시해된 옥호루
우리가 약소국일때 당한 가슴아픈 역사의 흔적이다. 일본은 그러면서도 사과할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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