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에 가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고산 윤선도가 머물렀던 부용동과 세연정을 한번 보고 싶었기 대문이다.
여러유적이 있는데 그곳을 통틀어 고산 윤선도 원림이라하고 그중 가장 위쪽에 있는 곡수당을 제일 먼저 들르게 되었다.
고산윤선도원림
1992년 1월 11일 사적 제36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월 8일 명승 제34호로 변경되었다. 지정면적은 480,728㎡이다.
병자호란 때 인조임금의 항복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은거를 결심한 윤선도가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의 수려한 경관에
매료되어 머물렀던 곳이라고 전한다.
윤선도는 1637년(인조 13)부터 1671년 죽을 때까지 일곱 번이나 이곳에 드나들며 글을 쓰며 생활 했는데 햇수로는 13년이나 되어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지가 많다.
① 세연지(洗然池): 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을 판석(板石)으로 만든 보(길이 11m, 너비 2.5m의 돌다리)를 설치하여 둑을 조성하고
자연적으로 수위조절이 되도록 조성한 연못이다.
② 세연정(洗然亭): 1637년 세연지 가에 단을 조성하여 지은 3칸짜리 정자이다.
③ 낙서재(樂書齋):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석실과 마주보이는 곳에 있다. 무민당(無悶堂) 등 건물 4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집터만 남아 있다.
④ 곡수당(曲水堂): 낙서재 건너 개울가에 지은 집이다. 윤선도의 아들이 조성한 초당·석정(石亭)·석가산(石假山)·연못·화계(花階)·다리
등의 다채로운 조원(造苑)이 베풀어진 곳이다.
⑤ 동천석실(洞天石室): 곡수당 건너 산중턱 절벽 위에 지은 1칸짜리 집. 여기서 독서하며 사색을 즐겼다 한다.
소은병(小隱屛), 오운대(五雲臺), 독등대(獨登臺), 상춘대(賞春臺), 언선대(偃仙臺) 등 그가 섬 안의 바위와 산봉우리에 붙인 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어부사시사(漁夫四時詞)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며, 특히 보를 막아 연못을 조성하는 등
기발한 안목 등 윤선도의 뛰어난 안목을 엿볼 수 있는 유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길도 윤선도 원림 [甫吉島尹善道園林] (두산백과)
고산 윤선도가 돌아가산뒤 후손들이 살다가 300여년동안 폐허로 있었는데 2007년 복원했다.
하연지
곡수당
사당
상연지
곡수당에서 올려다본 낙서재
멀리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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