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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유럽·발칸7개국

동유럽/발칸 065 - 0425 아드리아의 진주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1

by 柔淡 2016. 7. 1.

두브로브니크 성곽에서 내려와 이번에는 구시가지 건물과 골목길을 여기저기 둘러본다.


도시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데


두브로브니크는 7세기 전반에 에피다우름(Epidaurum) 피난민들이 섬에 정착해 ‘라우스(Laus)’라고 명명하면서 건설되었다. 15세기까지 불리던 이름 라구사(Ragusa, Rausa)는 라틴어로 암석을 의미하는 ‘Lausa’에서 왔다. 그 반대쪽의 스르지(Srđ) 산 아래에는 크로아티아어로 떡갈나무를 뜻하는 ‘두브라야(dubrava)’에서 기원한 ‘두브로브니크’라는 정착지가 있다.

이 정착지는 슬라브족이 일구었는데, 12세기경 섬과 해안 간의 해협이 메워지면서 정착지가 통합되었고 이때부터 비잔틴 제국의 보호를 받았다. 제4차 십자군 원정 이후 베니스의 통치(1205~1358) 아래 있었으며, 1358년에 자다르(Zadar) 평화협정에 따라 헝가리-크로아티아 왕국으로 합병되었다가 15, 16세기에 절정에 이른 실질적인 공화제 자유국가였다. 그 후 지중해 해운업의 위기와 공공건물을 대부분 붕괴시킨 1667년 4월의 지진 참사 때문에 공화국의 행복은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이 엄청난 지진은 도시 발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두브로브니크는 균형 잡힌 거리 배치를 지닌 중세 후기의 성곽도시로, 놀랄 만큼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웅장한 요새와 기념비적인 성문에 있는 뛰어난 중세 양식,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 중에는 1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시청(지금의 렉터스(Rector's) 궁)이 있으며, 14세기에 지어졌으나 외관은 거의 바로크 양식인 프란체스코 수도원, 1667년의 지진 이후 재건축된 대규모의 도미니크 수도원 대성당,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예술가의 손을 거친 작품임을 증명하며 절충적인 외관을 지닌 관세청(Sponza), 그리고 도시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Blaise) 성당 같은 바로크 양식 교회 등이 있다.

원래 세계유산은 방어벽과 도시 내부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후 15세기에 계획, 개발한 필레(Pile)의 중세 교외 공업단지와 11세기 초부터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15, 16세기 형태를 지닌 절벽의 로브리예나츠(Lovrijenac) 요새를 포함시켰다. 여기에 17세기 초에 지어져 외국에서 들어오는 전염병 보균자들을 수용했던 검역소와 남동 돌풍으로부터 항구를 보호하려고 15세기 말에 조성한 방파제, 북쪽에 있는 해자를 통제하려고 1449년에 지은 레벨린(Revelin) 요새도 추가했다.

로쿠룸(Lokrum) 섬은 해변에서 500m 떨어진 두브로브니크 남동쪽에 있다. 이 섬은 1023년에 베네딕트회 수도원이 되었는데, 이는 두브로브니크의 여러 공화국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몇 세기 동안 계속 확장되었으며, 15세기 후반에 파도바(Padua)에 있는 성 유스티나회 신도들에게 넘어가면서 베네딕트회의 잔해가 있던 남쪽에 고딕-르네상스 양식으로 새로운 수도원을 세웠다. 19세기 초의 점령 기간에 프랑스인이 왕립 요새 항구를 건설하기 시작해 1830년에 오스트리아인이 완공했다. 1859년에는 훗날 멕시코의 황제가 된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Maximilian) 대공이 베네딕트회 수도원의 폐허가 있던 곳에 고전주의 양식의 저택을 지으려고 이 섬을 샀는데, 공사는 일부만 완료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 [Old City of Dubrovnik]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네스코한국위원회(번역 감수))









렉터궁전

1435년 두브로브니크 수로와 분수를 건설한 오노프리오 데 라 카바(Onofrio de la Cava)가 건축했다. 후기고딕과 초기르네상스양식을 혼합한 아름다운 건축물이며, 귀족들을 위한 업무와 종교행사 때만 사용하였다. 총격으로 심하게 부서지고 1667년 대지진으로 건물이 심각하게 훼손된 후 17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보수되었다.

궁전 정면에는 기둥이 늘어서 있고 교회의자처럼 장식한 석조벤치가 놓여 있다. 내부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조성되었는데,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 기간에는 이곳에서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2층은 현재 시 박물관으로 사용하는데 라구사공화국(Republic of Ragusa) 시절의 유물들을 전시한다. 특히 1만 5000점의 회화작품 중 대부분은 베네치아와 달마티아 예술가들의 작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렉터스 궁전 [Rector's Palace] (두산백과)







두브로브니크대성당

구시가지에 위치한다. 원래 12세기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으로 건축되었고 1667년 대지진에 의해 파괴되자 1672년부터 1713년까지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드레아 불파리니와 파올로 안드레오티가 로마-바로크 양식으로 건축했다. 가운데 돔 모양의 지붕이 높이 솟아올라 있어 아름답다.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St. Blaise)의 유물을 포함한 수많은 보물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금으로 된 작은 보석상자에는 그의 유골과 발이 보관되어 있다.

성당 외부는 고급스러운 회색으로 되어 있고 성인들의 조각상으로 장식되었다. 내부는 밝고 바람이 잘 통하게 디자인했으며 로마네스크와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장식으로 치장했고 벽화로 마감하였다. 주 제단은 금색의 플립티크 디자인으로 되어 있으며 티탄(Titan)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그림이 그려졌고 옆 보조제단은 보라색 대리석으로 장식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Dubrovnik Cathedral] (두산백과)


스폰자궁


구시가지의 스트라둔(Stradun) 거리 끝에 있다. 1516~1522년 해상무역 중심 도시국가 라구사공화국(Ragusa Republic)의 모든 무역을 취급하는 세관으로 지었다. 당시 드브로브니크에 지배적이었던 후기 고딕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건축물로 건축가 파스코예 밀리체비치(Paskoje Miličević)가 건설을 맡았다.

커다란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 있으며 우아한 아케이드, 기다란 고딕 양식의 창문 등이 특징이다. 중앙홀은 예전에 많은 무역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이용되었고 한쪽 부속건물에는 14세기 국립조폐국이 들어섰으며 그밖에도 은행·귀중품창고·무기고 등이 있었다. 현관과 건물의 조각장식은 안드리지치(Andrijić) 형제가 담당했다. 두브로브니크에서도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며 1667년의 대지진에도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본모습이 보존되어 있다. 16세기 말에 라구사공화국 중앙문화센터로 바뀌었다. 현재 매년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의 개막식이 열리며 중앙홀은 미술관으로 이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폰자궁 [Sponza Palace] (두산백과)






성 블라이세 성당

구시가지의 중심가인 스트라둔(Stradun) 거리 광장에 위치하며, 두브로브니크 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성당이다.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성 블라이세에게 헌납되었으며 입구 위에 그의 조각상이 서 있다. 1368년에 건립되었으며 1369년에 화재가 났고 1667년 대지진 때 파괴되었다. 지금의 바로크 양식 건물은 1706년에 시작하여 1717년에 완공되었으며, 베네치아의 건축가인 마리노 그로펠리(Marino Gropelli)가 지었다.

도시의 가장 핵심 되는 랜드마크로 도시인들의 모임 장소이기도 하다. 1971년에 지역 예술가들이 창문을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몄다. 정면 계단에서는 도시의 주요한 행사인 새해 전날 행사 또는 여름페스티벌의 오프닝 등이 개최된다. 성 블라이세를 기리는 페스티벌은 1972년부터 매년 열리는데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의 오랜 전통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성블라이세 성당 [Church of St. Blaise] (두산백과)




플라차거리, 스투라둔 거리












시계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