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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포르투갈·스페인·남프랑스

스포남프 029 - 1127 스페인 석류 그라나다에서 중세도시 똘레도로

by 柔淡 2016. 12. 21.

알람브라 궁전을 오후내내 돌아보고 그라나다에서 가까운 외곽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11.27일 일요일, 오늘은 석류라는 뜻을 지닌 그라나다에서 스페인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똘레도로 이동한다.

그라나다에서 똘레도 까지는 360km로 약 다섯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가다가 중간에 라만차라는 작은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가기로 한다. 그런데 "라만차"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아, 동키호테가 라만차 출신 아니던가? 라만차의 동키호테!!!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에서  중부 똘레도까지 가는길, 좌우측으로 끝없는 올리브나무 밭이다.

그 많은 올리브 열매를 어떻게 수확하나 물어봤더니 나무밑에 비닐커튼을 깔고 기계가 움직이면서 나무를 치면 올리브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는데 그걸 주어서 모은다고 한다.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딸수가 없다고... 그러고 보니 터키여행때 그런 장면을

본 기억이 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톨레도 역사 도시
[ HistoricCityofToledo ]

톨레도(Toledo)는 로마의 자치도시, 서고트 왕국(VisigothicKingdom)의 수도, 코르도바 에미레이트(EmirateofCordoba)의 요새였으며, 무어인과 싸운 기독교 왕국의 전초기지였다. 또한 16세기의 카를 5세 치하에서는 한때 최고 권력의 근거지였으며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도시였다. 이 도시의 걸작들은 3대 주요 종교인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공존하면서 이질적인 문명들이 서로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톨레도 역사 도시© UNESCO / Author : F. Bandarin원본보기

카스티야라만차 자치지방(AutonomousCommunityofCastile-LaMancha), 톨레도 주(ProvinceofToledo)
좌표 : N39 52 0.8, W4 1 45.9지도


본문
톨레도는 나르본(Narbonne, 프랑스 남부의 도시) 지역까지 뻗어 있던 서고트 왕국의 수도였으며, 르네상스기에 스페인의 가장 중요한 예술 중심지의 하나이다. 이곳은 원형극장 · 수로 · 하수시설 등의 흔적을 남긴 로마, 그리고 왐바(Wamba) 왕의 성벽 유물과 산타 크루스(SantaCruz) 박물관에 보존된 공예품들을 남긴 서고트 왕국처럼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몇 개의 문명을 훌륭하게 증언하고 있다.코르도바 에미레이트의 문명은 위대한 이슬람 양식의 예술적인 기념물을 많이 탄생시켰다. 파괴된 바노 데 라카바(BanodelaCava) 다리의 교각, 푸에르타 비에하 데 비사그라(PuertaViejadeBisagra, 비사그라 문), 라스 토르네리아스(LasTornerias) 모스크, 빕 마르둠(BibMardum) 모스크(999년에 완공된 개인 예배당), 카예 델 앙헬(calleDelAngel)과 카예 포소 아마르고(callePozoAmargo)에 있는 목욕탕 등이다.1085년에 레콘키스타(Reconquista, 국토회복운동)가 끝난 후 예전의 건축 부지(6세기에 산 에우헤니오(SanEugenio)가 건축한 대성당이 모스크로 바뀌었음)와 산로만(SanRomán), 산티아고, 산 페드로 마르티르(SanPedroMartir) 등의 미개척지에 산타 마리아 라 블랑카(SantaMaríalaBlanca) 시너고그(Synagogue, 유대교 예배당, 1180), 엘 트란시토(ElTransito) 시너고그(1366)와 같은 뛰어난 유대교 기념물들이 성당들과 동시에 세워졌다. 또한 톨레도에는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다양한 종류의 구조물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성벽과 산세르반도(SanServando) 성과 같은 요새 건물, 교량, 주택, 그리고 전체 도로 시설과 같은 것들이다.톨레도에는 산 후안 데 로스 레예스(SanJuandelosReyes) 성당, 대성당, 산 후안 바우티스타(SanJuanBautista) 성당, 산타 크루스 병원(SantaCruzHospitals, 수용 시설), 푸에르타 누에바 데 비사그라(PuertaNuevadeBisagra, 북쪽 비사그라 문)와 같은 15세기~16세기 건축의 탁월한 사례들이 남아 있다. 이곳의 종교 건축과 병원 건물, 군사 시설 등의 기념물들은 각각 스페인 황금기 건축의 고유한 형태를 완벽하게 보여 주는 사례이다.또한 중세 시대에 시작된 톨레도는 서고트족과 이슬람 예술의 구조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들을 결합하고 이후에 등장한 다른 양식에 접목시킨 무데하르(Mudejar) 양식이 시작된 곳 중의 하나이다. 이 무데하르 양식의 기념물들로는 산티아고 델 아라발(SantiagodelArrabal, 13세기), 무어인들의 공방(工房)과 푸에르타 델 솔(PuertadelSol, 14세기), 산타크루스 병원의 징두리판벽과 대성당의 사제단 회의장(15세기와 16세기) 등이 있다.알폰소 4세(AlfonsoIV)에 의해 완공된 뒤 연속해서 로마의 한 도시, 서고트 왕국의 수도, 코르도바 에미레이트의 요새, 무어인과 싸우던 기독교 왕국들의 전초기지가 되었고, 카를로스 4세(Charles V)가 황제의 도시이자 권좌의 도시라는 지위를 부여한 최고 권력의 근거지가 되었다. 따라서 이 도시의 성벽 안에는 2,000년의 역사가 살아 있다. 1561년에 필리프 2세(PhillipII)가 마드리드(Madrid)를 영원한 수도로 선택한 뒤 톨레도는 경제적 · 정치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몰락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 몰락으로 인해 박물관 같은 이 도시는 기적처럼 보존되었다.톨레도의 장대함에 기여한 모든 문명들은 본래 이곳에 있던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아름다움과 오랫동안 3대 종교(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공존해 온 특수한 환경에서 이질적인 문명들이 접촉하면서 탄생한 무데하르 양식으로 연결되며, 무데하르 양식은 역설적인 혼합주의를 모두 표현하면서 놀라운 걸작들을 남겼다.톨레도의 알카사르(Alcázar, 성채)는 이 도시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인상적인 건물이다. 처음에는 로마인들이 궁전으로 사용하다가 알폰소 6세(AlfonssVI) 통치 기간에 기독교인들이 재건했다. 현왕(賢王) 알폰소 10세(Alfonso X)는 건축을 계속하도록 했는데, 정사각형 바닥 평면과 그 귀퉁이에 흉벽(胸壁) 탑을 설치하는 건축 방법의 기원이 된 것이 이 건축물이다.파사드(facade, 건물의 한쪽 면, 대개 문이 있음)는 만들어진 시기와 양식에 따라 서로 다르다. 서쪽 파사드는 르네상스 양식이고 동쪽은 중세식, 북쪽은 플라테레스크(Plateresque) 양식, 후안 데 에레라(JuandeHerrera)가 만든 남쪽은 추리게라(Churrigueresque) 양식이다. 또한 알카사르에는 코린트식(Corinthian) 주두(柱頭)를 가진 2층으로 된 파티오(patio, 건물 사이의 안뜰)도 있다. 알카사르는 1170년, 1867년, 1882년에 큰 화재를 겪었다.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 사관학교가 이곳을 사용하다가 전쟁이 끝날 무렵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나중에 완벽하게 복구되어 현재는 군대 사무실과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올리브 과수원















스페인 고속도로 휴게소



점심을 먹은 라만차





식당 이름이 세르반테스다.



라만차에서 다시 톨레도로


올리브기름, 아르간 오일등을 파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