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광주·전라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명옥헌 (09. 07. 29)

by 柔淡 2009. 7. 31.

여름휴가를 맞이해서 담양 - 장성 - 영광 - 정읍 - 김제 - 부여를 다녀왔다.

첫날은 한국의 가사문학의 고향이자 전통의 원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담양을 찾았다.

담양하면 사람들은 죽록원이나 1박2일에 나왔던 죽향문화체험마을, 메타세콰이어길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몇백년 앞서 우리나라 가사문학을 꽃피웠던

가사문학의 산실이며 우리의 전통정원인 원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곳으로 이름난 곳이다.

소쇄원 - 환벽당 - 취가정 - 식영정 - 명옥헌 - 송강정 - 면앙정등을 둘러보았는데 명옥헌이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가장 가깝기에 제일먼저 들렸다.

3년전에도 왔지만 겨울이라 명옥헌의 상징인 배롱나무꽃을 못보았는데 이번에는 꽃이 핀 모습을 볼수 있었다.

 

뜻있는 부모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메모를 해가면서 가사문학과 원림에 대하여 공부하는것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명옥헌 설명  

 

담양군청  홈페이지 발췌

 

오희도(吳希道, 1583-1623). 자(字)는 득원(得原), 호(號)는 명곡(明谷)

160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23년(인조 1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합격하였다. 예문관(藝文館)의 관원으로 천거되었고, 기주관(記注官)을 대신하여 어전에서
사실을 기록하는 검열(檢閱)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망하였다.

오희도(吳希道)의 넷째아들 오이정(吳以井, 1619-1655)이 자연경관이 좋은 도장곡(道藏谷)에 헌(軒)을 짓고 이를 명옥헌(鳴玉軒)이라 이름지었다. 오이정은
스스로 호(號를) 장계(藏溪)라 한바 장계정(藏溪亭)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그 후 100여 년이 지나 정자가 퇴락함에 따라 후손 오대경(吳大經)이 다시
중수하였다.
명옥헌(鳴玉軒)은 정자 앞에 연못이 파여 있고 둘레에 적송(赤松) 및 자미나무 등이 심어져 뛰어난 조경으로 알려졌으며, 장계정(藏溪亭)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또는 뒤편에 도장사(道藏祠)라는 사당에 있으므로, 도장정(道藏亭)이라고도 부른다.

명옥헌원림은 주변의 자연경관을 차경(借景)으로 도입한 정사(亭舍)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정원양식이지만 전(前)과 후(後)의 조선시대 전통적인 ’방지중도형
(方池中島形)’의 지당부(池塘部)를 도입하였다. 전(前)의 지당부는 명옥헌의 북쪽에 위치하며 그 고저차는 약 6.3m이다. 동서너비 약 20m, 남북길이 약 40m
크기를 갖는 방지의 중심부는 원형의 섬이 있으며 주위에 약 20주의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수령은 100여 년 정도이다. 명옥헌의 동쪽에 자리 잡은 지당
(池塘)은 동서 16m, 남북 11m 크기이다. 이 지당은 1979년 여름에 조사 발굴된 것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계류의 물을 끌어 채운 것으로 북과 서쪽에
자미나무가 심어져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정자로 실의 구성은 외부로 툇간을 돌리고 그 중앙에 실을 둔 중앙실형(中央室形)이다. 방에는 구들을 두었고 평천장을 하였다.
마루의 외곽에는 평난간을 두었다.
 
관광공사 홈페이지 발췌
 
명옥헌원림은 담양군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 안쪽에 위치한다. 별뫼의 원림들보다 한세대 뒤인 1625년, 명곡 오희도(1583~1623)를 기리기 위해 그의 넷째 아들인
오이정(1618~1655)이 도장곡에 창건하였다. 사각형의 작은 위 연못과 사다리꼴 모양의 아래 연못으로 이루어졌고, 그 사이에 정자를 세웠다. 계곡사이로 수량이
풍부했을 때에 “물이 흐르면 옥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하여 이름을 얻었다.
위 연못은 인공적인 석축을 쌓지 않고 땅을 파내어 큰 우물같이 보인다. 아래 연못은 동서 20m, 남북 40m 크기로 자연 암반의 경사지를 골라서 주변에만 둑을 쌓아
연못을 만들었다. 명옥 헌원림은 주변의 자연 경관을 차경으로 도입한 정사 중심의 자연순응적인 전통정원양식이지만 전(前)과 후(後)의 조선시대 전통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지당부(池塘部)를 도입하였다.

명옥헌은 연못 주변에 심어진 약20여 그루의 백일홍나무로 유명하다. 꽃 이름과 같이 여름철이 되면 석달 열흘 동안 늘 붉은 꽃나무 열에 연못이 둘러싸이게 된다.
바깥으로는 다시 소나무들이 열 지어 서 있다.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전국의 인재를 찾아 호남지방을 방문할 때 후산에 머물고 있는 오희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때 명옥헌의 북쪽 정원에는 은행나무가
있고 명옥헌 뒤에는 오동나무가 있었는데 이들 나무 밑에 인조(仁祖)가 타고 온 말을 맸다고 하여 이 나무를 일명 ‘인조대왕 계마행(仁祖大王 繫馬杏)’ 또는
‘인조대왕 계마상 (仁祖大王 繫馬像)’이라고 부른다. 현재 오동나무는 고사하여 없어졌고 은행나무만 남아있다. 인조는 오희도를 등용하기 위해 세 번 찾아왔다고
하며, 훗날 우암 송시열은 명옥헌의 영롱한 물소리와 경치에 반하여 ‘명옥헌’이라는 글씨를 바위에 새기기도 하였다.
 

 

 

 

 

 

 

 

 

 

 

 

 

 

 

 

 

 

 

 

 

 

 

 

 

 

 

 

 

 

 

 

 

 

배롱나무

키가 5m 정도 자란다. 어린 가지는 네모져 있으며, 수피(樹皮)는 홍자색을 띠고 매끄럽다. 잎은 마주나고 잎가장자리가 밋밋하며 잎자루가 없다. 붉은색의 꽃이

7~9월에 원추(圓錐)꽃차례를 이루어 피지만 흰꽃이 피는 품종인 흰배롱나무(L. indica for. alba)도 있다. 꽃의 지름은 3㎝ 정도이고 꽃잎은 6장이다.

수술은 많으나 가장자리의 6개는 다른 것에 비해 길며, 암술은 1개이다.

중국에서 자라던 식물 중 키가 작은 품종이 뜰에 널리 심어지고 있다. 붉은빛을 띠는 수피 때문에 나무백일홍[木百日紅], 백일홍나무 또는 자미(紫薇)라고 부르
기도 한다. 이밖에 백양수(간지럼나무), 원숭이가 떨어지는 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나무줄기가 매끈해 사람이 가지를 만지면 나무가 간지럼을 타고, 또한
원숭이도 오르기 어려울 정도로 매끄러운 나무라는 것을 뜻한다. 국화과에 속하는 초백일홍(草百日紅)인 백일홍과는 전혀 다른 식물이다.
배롱나무는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며, 빨리 성장하고 가지를 많이 만들어 쉽게 키울 수 있지만 내한성이 약해 주로 충청남도 이남에서 자란다. 서울 근처에서는
겨울에 짚 같은 것으로 나무줄기나 나무 전체를 감싸주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1254년에 쓰여진 〈보한집 補閑集〉에 자미화(紫薇花)가 언급된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심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에 있는 배롱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데 약 800년 된 것으로
보고 있다.
申鉉哲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