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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다양한 보물을 품고있는 1300년고찰, 안성 칠장사 (09. 08. 29)

by 柔淡 2009. 9. 4.

 플로랜드를 돌아보고 다음목적지인 서일농원으로 가는도중 칠장사를 안내하는 이정표가 보이길래 칠장사부터 들렸다 가기로 한다.

이번여행에서 칠장사도 당연히 코스에 들어 있었으므로...

안성땅은 넓지만 대부분 안성시내에서 30분이내로 갈수있는 곳에 가볼만한곳이 분포되어 있어 돌아보기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시내권과 동, 서, 남, 북부권으로 나누는데 칠장사는 동부권이라고 보면 될것 같다.

그러니까 시내에서 출발해서 동부권쪽으로 가는것이다.

 

칠장사 소개글 (안성관관홈페이지)

 

죽산면 칠장리 칠장사는 칠현산 산기슭에 바짝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철따라 바뀌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울창한 숲에 고풍스러운 칠장사가 안겨 한적한 풍광을

연출한다. 칠장사는 손때가 묻지 않아 찬찬히 살펴봐야 할 보물들이 많다. 칠장사 일주문 전방 700m 지점에 전국에 몇 개 없는 철당간이 서있고, 진흙소조로

만든 사천왕상이 찾는 이들을 압도한다.

칠장사는 선덕여왕 5년(636)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곳에서 수도하고 입적한 고려 때 고승 혜소국사가 현재 비각이 있는 자리에 홍제관이라는

수행처를 세웠고, 현종 5년(1014) 크게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칠장사는 예로부터 깊은 차령산맥이 그 줄기를 품고 있어 고려 말 왜적의 침입이 잦을 때 사서를

칠장사로 옮겨 8년간 비장해 소실을 면한 일이 있다.

칠장사의 묘미는 빛 바랜 단청이 고색창연한 대웅전을 찬찬히 굽어보는 것이다. 새것을 덧씌우는 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칠장사 대웅전이

말해준다. 오랜 풍상을 겪은 대웅전은 단청 문양을 세월에 날려 보냈지만 힘있게 뻗은 추녀에서 힘찬 자태를 느낄 수 있다.

대웅전의 기풍을 눈여겨 보고 있으면 칠장사의 오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것 같아 자연스레 칠장사에 얽힌 이야기에 귀를 열게 된다. 대웅전 오른쪽 옆에 조각

솜씨가 빼어난 석불입상 한 기가 모셔져 있다. 본래 죽산리 봉업사터에 있었던 이 불상은, 절이 폐사되자 죽산중고등학교 교정에까지 흘러갔다.

자연 방치되다가 이곳 칠장사로 옮겨왔다고 한다.

불상은 두광 아래로 발께까지 신광이 표현되어 있고,큼직한 꽃무늬 대좌 위에 모셔져 있다. 불상에 비해 대좌는 풍상의 흔적이 적은 깨끗한 화강암이다.

불상은 특히 얼굴의 눈ㆍ코 부분이 마모가 심하지만 불상을 빚은 조각 솜씨는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다. 오른손을 들어 살포시 가슴에 얹고, 왼손은 차분히 내려

무릎 아래로 늘어진 옷자락을 잡고 있는데 그 자태가 일품이다. 어깨에 걸쳐 가슴을 타고 내린 얇은 법의의 선, 3기의 화볼을 인 두광, 그 뒤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광대의 조각 솜씨가 그 시대의 정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화려한 조각솜씨를 미루어 보면 8세기통일신라시대 양식의 우수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고 한다.

 

 

제1주차장 입구의 돌비석 

 입구에서부터 공사중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제2주차장에서 올려다 보이는 칠장사

 설화상으로는 1300년의 고찰이지만 1000년전인 고려 현종때부터 역사의 기록에 나타난다고 한다. 

 

 경기도 지방문화재 115호인 사천왕문. 이안에 모셔져 있는 사천왕상은 특이하게 진흙으로 만들어졌다.

아쉽게도 사천왕상 사진은 못찍었다.

 

 

 

 

 범종각

 

 

 홍제관

 홍제관에는 국보, 보물, 경기도 유형문화재 각 한점씩이 모셔져 있는데 아쉽게도 평상시엔 볼수가 없고 절에서 큰행사가 있을때

국보인 오불회개불탱은 1년에 한번정도 볼수 있다고 한다.

 

 

 

 

 기와로 낮게 쌓은 담장이 소박하다.

 홍제관의 옆모습

 입구 일주문 부터 공사중이었는데 대웅전 앞의 3층석탑을 대규모로 보수하는 모양이다. 

 

 

 

 대웅전의 단청이 고색창연하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오래된 고찰의 단청은 이렇게 보존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름난 고찰들이 대규모 공사를 일으켜 일주문을 새로 새우고 단청을 새로 칠하고 하는게 유행인가 본데 보존하는데 지장이 없다면

이런 상태로 유지 보수하는게 더 좋다고 본다.

이건물에 단청을 새로 칠하면 나이많은 여자가 새빨간 립스틱을 칠한것 처럼 보이지 않을까?   

 아침에 안성맞춤박물관에서 만나뵌 소병성 해설사님이 알려주신 봉업사 석불입상이다.

안성은 고려시대에는 큰 절만 26개가 있었던 불교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는 고장이었다고 한다.

 

봉업사는 언제 창건되고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 수 없어 ‘매곡리 폐사지’라 불리기도 했으나 1966년 경지정리 작업시 출토된 유물에서 이곳이 봉업사였음을 말해

주는 명문이 발견되어 비로소 봉업사지로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 절의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고려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의 봉업사’가 바로 이곳임을 밝혀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요성이 증명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조의 진영을 모셨다는 것은 이곳이 진전사원이었다는 의미인데 진전사원이란 왕실의 의지에 따라 죽은 왕의 진영을 모시고 위업을 기리며 명복을 비는 사찰로

태조의 진전사원은 전국의 이름난 사찰(개성의 봉은사, 논산 개태사 등)에 두었던 것으로 보아 봉업사가 결코 만만한 사찰이 아님을 밝혀주는 것이다.

(참고로 고려시대 사찰중 앞에 奉이 붙는 사찰은 왕건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건립되었다)

이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되면 보다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것으로 기대된다.

 

 

 

 

 

 

 대웅전 옆의 원통전

 좌측 종무소, 우측 응향각

 원통전의 정면

 명부전 

 자세히보면 느티나무 밑둥이 갈라져있는데도 무성한 잎을 매달고 있다. 

  

 

 천왕문 

 범종

   

 

 경기도에서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철당간

  

 

 칠장사는 2단으로 구역이 조성되어 있는데 지금가지는 주로 입구와 1단에 있는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등을 살펴보았다.

다음편에서는 2단의 건물들과 소나무에 대해서 적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