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전적지를 둘러보는 거북배는 원래의 기항지인 해남 우수영으로 돌아가는데 우리는 벽파진에서 내렸다.
벽파진
제주도, 거제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진도를 찾아가는 길은 예전에 광주, 나주, 영암, 해남을 거쳐 돌아가야 했으나, 지금은 목포에서
해남읍내를 거치지 않고 영암방조제와 금호방조제를 가로질러 진도에 갈 수 있게끔 길이 단축되었다. 유인도 45개와 무인도 185개로 이뤄진 진도의 호국
전적지로는 섬 동북쪽에 들어선 벽파진의 이충무공전첩비와 용장산성, 그리고 남쪽의 남도석성이 있다. 진도대교를 건너 읍내로 가다보면 군내면 세등리
를 지나면 용장산성 안내판이 나타난다. 이를 따라 좌회전,1.7km를 가면 용장산성 입구인데, 벽파진은 이 곳에서 계속 바다를 향해 3.5km 가량 간다.
벽파진은 옛날부터 진도의 관문 구실을 했던 나루터로 명량해협의 길목을 지키고 있다. 바다 건너편은 해남군 황산면 땅이다. 포구 뒷편 암산에 오르면
이충무공전첩비가 우뚝 서 있다.1956년에 세워진 이 비에는 이은상 선생이 지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벽파진 푸른 바다여 너는 영광스런 역사를 가졌도다.
민족의 성웅 충무공이 가장 외롭고 어려운 고비에 빛나고 우뚝한 공을 세우신 곳이 여기이더니라."이 싯귀가 벽파진의 이충무공을 한 마디로 요약하고 있다.
전첩비로 오르는 계단 왼쪽에 비를 세운 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정유재란때 이순신장군은 12척의 함선으로 명량해협 (울돌목)에서 3백여 척의 왜선을
섬멸, 유명한 명량대첩(1597)을 거둔다.
벽파진은 바로 그 명량대첩을 거두기 직전 16일 동안 이순신이 머물면서 나라의 미래와 백성의 안위를 고민하고 전열을 가다듬고 작전을 숙고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비석의 높이는 11m이며 커다란 돌거북 등 위에 얹혀 있으면서 명량해협을 굽어보고 있다. 이곳에서 산등성이를 하나 넘으면 고려 삼별초의
근거지였던 용장산성 행궁터가 나온다. 용장산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삼별초가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배중손이 이끄는 삼별초는 이곳에서 몽고군
에 맞서 싸우다 남도석성으로 밀려가고 끝내는 제주도로 건너간다. 벽파진은 지금도 항구로서의 기능을 발휘, 목포와 제주를 오가는 배가 하루에 한번씩 기항
한다. 벽파여객선터미널(061-542-4500)에서 판매한다.
벽파진 언덕에서 내려다본 해남
바다에서 바라본 벽파진
자연 암반위에 비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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