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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제주

[제주갈레, 제주여행] 돌하르방에 미친 북촌돌하르방공원 김남홍관장

by 柔淡 2010. 1. 27.

제주의 돌하르방에 대해서 다시한번 정리를 해본다면

 

제주의 대표 상징물, 돌하르방. 구멍 숭숭 난 검은 현무암에 조각해 낸 툭 불거져 나온 눈과 뭉툭한 긴 코, 꼭 다문 입매와 불룩한 배에

얹어 놓은 두툼한 손. 돌 할아버지를 뜻하는 ‘돌하르방’이란 이름이 말해주듯 모진 환경에서 한평생을 보낸 우리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모습을 닮았다. 그렇지만 이 석상(石像)을 ‘돌하르방’으로 부른 것은 비교적 근래의 일이다.

조선조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세 읍성(邑城) 동·서·남문에 각각 세워져 있었던 제주섬 고유의 석상을 1971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하려

할 때 공식 이름으로 새로 지어 붙인 것이 돌하르방이다. 본래 민간에서는 돌하르방을 ‘벅수머리’, ‘우성목’, ‘무성목’ 등으로 불렀고, 문헌

에는 ‘翁仲石(옹중석)’으로 표기한 예가 있다. 제주의 민속학자 고(故) 김영돈 선생에 의하면 광복 전후에 도민들 사이에서 반 장난삼아

부르던 ‘돌하르방’이 널리 퍼지게 되었고, 결국 많은 민속학자들의 열띤 논란에도 불구하고 문화재의 공식 이름으로 등록되기에 이르렀

다고 한다.

돌하르방은 읍성별로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제주 수부의 성을 지키는 석상답게 가장 크고 호방한 모습에 이목

구비가 굵으면서도 뚜렷하게 조각되어 있어, 무인(武人)다운 기개가 느껴진다.
정의현(현재 성읍리)과 대정현(현재 보성리, 안성리)의 성을 지켰던 돌하르방은 제주목 돌하르방처럼 검은 현무암에 벙거지 쓰고 두 손을

배 위에 올려놓은 모습을 조각했지만 그 인상은 사뭇 다르다. 제주목 것에 비해 작고, 대체로 이등신으로 조각되어 있어 민중적 소박함과

해학이 느껴진다.
김영돈 선생은 정의현 돌하르방은 기하학적 형태처리로 날카롭고 단정하며, 대정현 돌하르방은 곡선적이며 대체로 소탈하고 온후하다고

인상을 적고 있다. 다양한 모습의 돌하르방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주목 돌하르방만이 수려한 풍모와 예술성으로 널리 알려져 상품화하고

있어 제주목 돌하르방 외에도 정의·대정현 돌하르방의 상품화가 이뤄질 때 제주돌하르방의 위상과 가치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돌하르방이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선 정확하게 문헌상으로 나와있는게 없고 기록에 의하면

 

제주도에 돌하르방이 세워진 시기는 확실치 않다. 다만, 김석익(金錫翼)의 《탐라기년 耽羅紀年》에 의하면, 영조(英祖) 30년(1754) 제주목사인

김몽규란 자가 성문 앞에 세웠다고 하는 내용이 전한다. 이처럼 조선 후기에 처음 제주도에 세워진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원(元)의 제주 강점

시기인 고려 후기에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돌하르방의 크기는 일정치 않다. 그러나 머리에 전모형의 모자를 쓰고, 두 손이 배 부분에서 위

아래로 모아져 있는 모습은 공통적으로 찾아진다. 얼굴도 다소 차이가 나긴 하지만, 퉁방울형 눈에 주먹코, 일자로 다문 입 모양은 일치된다.

현재 제주시에 21기, 남제주군에 24기, 국립민속박물관에 2기가 전하여 온다.

<참고문헌>
제주석상 우석목 소고(현용준, 제주도 8, 1963) 제주도의 석상·석구(김영돈, 문화재관리국, 1968) <유사·관련 용어> 거욱대, 영동하르방, 미륵,

벅수머리

 

이렇게 돌하르방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정리된게 없던것을 김남홍관장이 직접 제주의 돌로깍아 재현해 한자리에 모아 놓으면서

역사적 사실에다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여 돌하를방을 재해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것이다.

 

김남홍관장은 제주대 85학번으로 서양화를 전공으로, 조소를 부전공으로 공부 하였으며 원래는 제주의 산, 물, 바람을 주제로한

그림을 그린분이다. 그러면서 1편에서도 언급했지만 두모악 갤러리의 고 김영갑님과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고 나중에는

김영갑 두모악 갤러리의 조경과 석물을 지금처럼 꾸며 놓은분이기도 하다.

 

그분이 우리에게 직접 돌하르방을 만드는 시범을 보여 주셨다.

 

 제주 특유의 다공질 현무암으로 돌하르방을 만든다.

 

 작은것은 오로지 정과 망치만 사용한다. 크게 떼어낼때는 정을 곶추 세우고

 

 

 미세하게 담듬을 때는 정을 약간 눞힌다.

 

 

 

 이렇게 하나씩 손으로 다듬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한다. 그는 일반적으로 볼수있는 매끈한 돌하르방은 화장한 돌하르방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북촌돌하르방 공원에 있는 돌하르방들은 모두 울퉁불퉁한 날것 그대로의 돌하르방이다. 

 마지막으로 김관장의 사무실겸 작업실로 가서 인터뷰를 했다.

 두모악 김영갑 갤러리와의 인연도 이야기 하고.

북촌돌하르방공원을 만들면서 힘들었던 일, 허리가 아파서 돌 다루는데도 힘이들고, 공원을 만들며서 빚을 많이 진것도 이야기 한다.

그렇게 힘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돌하르방 공원을 만들고 운영유지 하는 이유는  그저 좋아서 미쳐서 하는 일이란다.

그는 돌하르방 공원을 만들어온 모든과정을 수십권의 스케치북에 기록해 놓았다.

 

앞으로 그가 가장 하고 싶은것은 종합적인 제주문화센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전설의 섬 이어도, 즉 제주사람들이 유토피아, 이상향이라고 생각하는 그런테마를 가지고 건전한 시민문화의식을 함양할수 있는

판을 벌리는것이 가장 큰 소망이라고 한다. 제주는 역사시대에는 유배지였고, 가장 최근에는 4.3사건이라는 질곡의 역사가 있었는데 그런

아픔을 뛰어넘고 제주사람들에게 희망을 줄수있는 공간을 만드는게 꿈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그가 벌여온 일들과 그의 각오로 볼때 우리는 머지않아 그가 만들어 놓은 제주문화센터를 만날수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도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