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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전남순천] 평지에 쌓은성, 낙안읍성의 여명 (02. 07)

by 柔淡 2010. 2. 11.

낙안읍성에서 하룻밤을 자고 새벽에 읍성위로 비치는 부드러운 햇빛을 찍어보려 했다.

일출시간이 일곱시, 민박집 할머님께 여쭤보니 서문 으로해서 성곽위로 올라가면 마을전체가 잘보이는 장소가 있다고 한다.

여섯시반에 민박집을 나섰다. 남쪽이라지만 아직 겨울의 찬기운이 많이 남아있다.

서문뒤쪽 성곽의 계단위에 서서일출을 기다렸는데 읍성 바로 앞에 우뚝솟아 있는 금전산(?)때문에 해는 제시간이 되어도

떠오르지 않는다.

 

산넘어는 해가 떠올랐는 모양인데 마을은 아직 깜깜하다. 

 아직 가로등이 켜져있다.

 일곱시가 되자 가로등이 일제히 꺼지고 새벽빛에 마을의 모습이 어슴프레 드러난다.

 

 몇몇집에서 밥짓는 연기도 피어오르고  닭우는 소리도 들렸다.

 

 

 

 

 

 

 

 새벽달은 서편으로 기울어져 가고

 

 

 

 

 

 성밖 너른 들판에는 조용히 봄의 기운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낙안읍성의 고지도

 

낙안읍성 소개글

삼한시대 마한땅, 백제때 파지성, 고려때 낙안군 고을터며, 조선시대 성과 동헌(東軒), 객사(客舍), 임경업군수비, 장터, 초가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성과 마을이 함께 국내 최초로 사적 제302호에 지정되었다.

조선태조6년(1397) 왜구가 침입하자 이 고장 출신 양혜공 김빈길 장군이 의병을 일으켜 토성을 쌓아 방어에 나섰고 300년후 인조4년 (1626) 충민공

임경업 장군이 33세때 낙안군수로 부임하여 현재의 석성으로 중수했다.

다른지역 성과는 달리 넓은 평야지대에 1∼2m 크기의 정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높이 4m, 너비 3∼4m, 성곽 총 길이가 1천4백10m로 동내,남내,

서내등 4만1천평에달하는 3개마을 생활근거지를 감싸안은 듯 네모형으로 견고하게 축조되어 400년이 가까운 지금도 끊긴데가 없고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 지금도 성안에는 108세대가 실제 생활하고 있는 살아숨쉬는 민속고유의 전통마을로서 민속 학술자료는 물론 역사의 산교육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동문을 비롯 서,남문을 통해 성안에 들어서면 사극 촬영장이 아닌가하는 착각에 빠져들며 용인,제주민속마을 같이 전시용이나 안동하회마을과 같이

양반마을도 아닌 그저 대다수의 우리 서민들이 살아왔던 옛 그대로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순천시가지에서 서쪽22㎞거리의 읍성민속마을은 6만8천여평으로 초가는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만 조상들의 체취가 물씬 풍겨 친근한 정감이 넘친다.

남부지방 독특한 주거양식인 툇마루와 부엌, 토방, 지붕,섬돌위의 장독과 이웃과 이웃을 잇는 돌담은 모나지도 높지도 않고 담장이와 호박넝쿨이

어우러져 술래잡기 하며 뛰놀던 어린시절 마음의 고향을 연상케 하며 마당 한켠의 절구통마저도 옛 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