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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전북익산] 남녀7세부동석 시대의 ㄱ자 예배당, 80년 역사의 두동교회

by 柔淡 2010. 4. 14.

익산은 원불교의 시발지 이자 원불교 총부를 비롯한 불교계를 대표하는 미륵사지, 천주교의 나바위성당, 개신교의 두동교회와 같은 4대

종교문화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이 어우러진 천년고도인데 작년에 왔을때는 원불교 총부와 미륵사지만 둘러보고 갔었다.

이번 팸투어에서는 90여년 역사를 가진 기독교의 두동교회와 김대건 신부님이 마카오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우리나라에 처음 도착한장소인

천주교 나바위성지를 둘러보는 계획이 짜여져 있다.

 

그중 두동교회를 먼저 둘러보았다. 

 

두동교회에 대한 박경진 장로님 글 (홀리원투어,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조선 500년 유교전통의 남녀유별 유풍은 한국교회건축만의 독특한 유형인 ㄱ자 예배당을 탄생시켰다. ㄱ자형의 한쪽은 남자석, 다른 한쪽은

여자석으로 구분하고 중앙에는 휘장을 쳐 남녀가 서로 볼 수 없게 구조된 ‘ㄱ’자형 교회건물은 전북 김제시 금산면의 금산교회와 전북 익산시

성당면의 두동교회 두 곳뿐이다.

두동교회의 설립과정에는 3천석지기 부자 박재신을 빼놓을 수 없다. 두동마을 사방 삼십리 지경에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날 수 없었다고

할 만큼 대단한 부자였던 그는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세우고 마을5백호의 세금을 대납해 주고 기근 때는 주민들을 구제하는 등 자비를 베풀어

마을입구에 그의 비석도 서 있다.
1896~1915년까지 이 지역에 처음 복음을 전한 선교사는 해리슨((W. B. Harrison, 하위렴)과 김정복 및 안신애 전도부인이다. 박재신의 어머니와

아내(한재순), 그리고 고모인 박씨 부인(월남 이상재의 막내아들(이승준) 며느리) 등이 안신애의 전도를 받고 3킬로미터 떨어진 부곡교회까지

다녔는데, 당시 손이 귀했던 박재신은 “예수 믿으면 집안이 복을 받고 자식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여자들이 교회당 가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마침내 부인이 임신을 하고 만삭이 되자,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 처소로 내놓았고 1923년 5월 18일, 구연직 전도사(해방 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역임)를 모시고 첫 예배를 드린 것이 두동교회의 시작 되었다.

마침내 아들 ‘요한’이 태어나고 박재신의 후원으로 두동교회는 1년 사이 교인이 80명으로 증가하여 박재신이 곳간으로 쓰던 ㄱ자형 창고로 예배

처소로 사용하였고 교회 안에 ‘배영학교’(후에 성영학교로 바뀜)도 세웠다. 그러나 1929년 아들이 병으로 죽자 박재신은 마음이 변하였고 지주의

눈치를 보던 교인들은 하나둘씩 교회를 떠나 20여명만이 믿음생활을 이어갔다. 이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고모상을 당했는데 출상일이 주일이라

3일장을 못하고 4일장을 해야 한다는 전도사님과의 의견충돌로 박재신은 급기야 자기 집에서 예배를 볼 수 없도록 하였다.

이에 교인들은 부근에서 유일하게 박재신의 땅이 아닌 현 위치에 새 예배당을 건축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1929년 6월 안면도 소나무를 실은 배가

군산 앞바다에서 침몰하여 소나무들이 두동리 근처 성당포까지 떠내려 오자, 교인들은 나무를 헐값에 사들여 100평 채소밭에 ‘ㄱ’자 예배당을

짓게 되었다.

두동교회는 남자석이 길고 강단이 남자석을 바라보고 있는 금산교회와 달리 두 공간을 똑같은 크기로 만들고 강단도 중간에 배치하는 등, 남녀유별

속에서도 남녀평등을 추구하였다. 또한 1933년까지 초등과정인 성영학원을 운영하며 민족혼과 독립정신을 가르치기도 했는데, 강대상 밑에 공간을

두어 설교 중 일본순사가 검문을 오면 숨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ㄱ자로 꺾이는 모서리의 안쪽 마당에 예배당 건립 당시 인근산에서 옮겨 심은 소나무 한 그루가 교회역사와 함께 서 있다. 6·25전쟁 때는 교회에

인민위원회 사무실이 들어섰고 교회 마룻장 아래 만들어진 작은 밀실은 당시 청년들이 몸을 숨기는 장소이기도 했다.

 

현재 교회 내부는 80년 전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장마루가 깔린 바닥, 의자와 강단, 그리고 인공시절, 청년들이 몸을 숨겼던 마룻장도 예전

그대로다. 1964년 5월 현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2002년에는 구 예배당인 ‘ㄱ’자형교회가 전북도문화재자료 제179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지정 한국기독교사적지 제4호로 지정되었다.

- 주 소 : 전북 익산시 성당면 두동리 385-1

 

 80년전 안면도산 소나무로 지은 두동교회 전경. 그때 심은 소나무가 아직도 푸르르다.

 

 창문을 통해서 들여다본 ㄱ자 형태의 건물. 강단안에는 방석이 있어 일경의 눈을 피해 숨을수 있도록 해놨다.

가운데에 휘장을 쳐서 남녀7세부동석을 실천했고 서로 볼수없게 만들었다고 한다.

 남자들의 좌석 왼쪽

 

 오래된 풍금이 이교회의 역사 알려준다.

 여자들의 좌석 오른쪽 통로

 독특한 조형미가 엿보이는 서까래

고색창연한 종탑 

 

 교회와 소나무, 종탑.

요즈음 오로지 대형화, 현대화를 추구하는 교회들이 이 초기 교회의 모습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느가? 

 예쁜 수선화가 교회마당에 피어있다.

 

 

 1964년에 지어진 현재의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