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달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오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대학루에 올라가 목포 시가지와 항구일대를
내려다 본다. 일제가 개항을 하면서 바다를 메우고 시가지를 조성해 자기들의 거주지로 만들어 주로 일본인들이 살아왔고
지금도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목포항과 구시가지. 갓바위가 있는 하당일대가 신시가지라고 한다.
갓바위
시민의종
구 일본 영사관
일제 수탈의 앞잡이. 구 동양척식회사
중앙의 흰건물이 이훈동 정원이다. 이 정원은 우리나라에 있는 일본식 정원중에서 가장 크고 아름답다고 한다.
해남군 출신 전 국회의원 박기배의 소유물이 되었다가 1950년대에 이훈동이 인수하였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정원이다.
목포시의 명산인 유달산 남동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1930년대 일본인 내곡만평(內谷萬平)이 서원 양식의 저택을 짓고 꾸민 정원이다.
해방후 40여년을 지나는 동안에 조경 내용이 크게 변하여 원형을 크게 잃었으나 난대성 상록수를 많이 심고 정연하게 잘라 심고 정연하게
잘라 다듬어 통일성을 이루었고 정원 안에 「춘일형」, 「직부형」, 「설견형」등의 일본식 석등의 기본형태가 갖추어져 있으며, 일본식
5층석탑과 7층탑등이 배치되어 있다는 데서 일본식 정원의 분위기를 다소 느낄수 있다.
정원은 입구정원, 안뜰정원, 임천장원,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정원의 정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통로는 직선으로 중앙선을 긋고 양편에 네모의 백색부분과 네모의 자갈깔이 부분을 엇바꿔 배치한
콘크리트 포장이며 그 양편을 꽝꽝나무로 갓돌림하고 안쪽의 공간에다 향나무, 종려, 얼룩식나무, 다매화, 은테사철, 모과나무, 배롤나무,
사쓰기철쭉 등을 심었으며, 현관바로 앞에 일본식 춘일형 석등을 배치하였다.
안뜰정원은 잔디마당을 바탕으로 하고 후박나무와 후피향나무, 종가시나무등을 심었다.
서쪽의 임천원(林泉園)에는 히말라야시이다, 주목, 삼나무, 편백나무, 종가시, 위성류, 다매화 등을 빈틈없이 심었고 수림속에 좁다란
시냇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후원은 언덕위의 판판한 잔디마당(동서30m, 남북8m)을 중심으로 그 윗편과 아랫편의 비탈면에 갖가지 나무를 심었다. 이곳에 심어진 나무는
우리나라의 양생종 38종과 일본종 37종, 중국종 26종, 기타 13종으로 모두 117종에 이르나 그루수로 본다면 일본종이 단연 우세하다.
개인소유라 마음대로 들어가 볼수 없다.
일본식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는 블레스 화원
목포여객터미널
교회 좌측의 언덕이 조선시대 수군의 진영이었던 곳이다.
삼학도
일본양식의 사찰
유달산 초입의 계단을 올라서면 맨 처음 관광객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이 있다. 충무공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1974년 5월 20일 총 209명으로 된 이충무공동상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1974년 8월15일 유달산내에 세워졌다. 비명은 박정희 대통령이 휘호,
탁련하(卓鍊河)선생의 조각을, 이은상·최순우·최영희 선생의 사료에 의한 고증 및 심의를 거쳐, 1974년 문화공보부 등록 제1호가 되었다.
(이은상이 찬하고 서희환이 쓴 비문)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아계신 애국정신의 상징이시다. 장군이 일찍 임진왜란때 1597년 5월 명량승첩 뒤 10월 29일 우수영으로부터 이곳 고하도에
이르러 이듬해 1598년 12월 17일 고금도로 옮기기까지 무릇 107일 동안 여기서 머무르면서 해를 가로 막아 전선 만들고 군량 모으고 군사를 훈련
하면서 진을 쳤었다. 그러므로 목포 앞바다에는 장군의 숨결이 베어들었고 지금도 다도해 하늘을 바라보면 장군의 모습이 나타난다.
저 산, 저바다에 서려있는 님의 맹세 조국의 제단에 자기 한몸 바치셨네, 피묻은 발자국 따라 나도 그 길 가오리다.”
높이 370cm, 너비 160cm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 동상은 피사의 탑처럼 옆으로 조금 기울어져 있다. 동상은 중심선을 기준으로 했을 때 투구까지는
약 0.5도 기울어져 있다. 동상이 일본이 있는 쪽을 정확한 각도로 바라보도록 하기 위한 것이며 장군의 사후에도 일본의 동향을 살피고 기운을
약하게 만들어 다시 침략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칼을 뽑는 순간 모습의 자세를 나타내고자하여 기울어지게 동상을 만들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개항 100년이 넘은 우리나라 최남단의 항구도시 목포는 과거와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퇴색한 듯한 느낌이 나는
그런 도시였다. 예로부터 교통의 중심지, 멋과 맛, 예향으로 알려진 이곳은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 일제때는 수탈의 전진기지로, 현대에는
소외받은 도시로 오래동안 누적되어온 민초들의 한이 예술로 승화되어 나타난게 아닌가 생각된다.
다음번에는 며칠간 머무르면서 목포를 제대로 알고 느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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