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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전남진도]망금산에서 내려다본 진도대교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1

by 柔淡 2010. 9. 16.

운림산방에서나와 해남과 진도사이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진도대교를 제대로 찍기 위해 진도쪽의 망금산에 올랐다.

진도대교는 언제봐도 그림이 된다. 탐론 18-270 망원렌즈로 마음대로 찍어봤다.


망금산은 망금 뒤에 있는 산으로 진도의 관문산이다. 산의 높이는 115m이다. 산정부에 가로 30m, 세로 20m의 토성이 축성된 흔적이 있다.

백제 이후 바다 물목을 지키는 군대 주둔지였다.

충무공 이순신진도를 남도(南道)의 요충(要衝)이라 하였고 조선  선조 때 판중추부사 윤두수진도를 "가장 중요한 관방지역(最爲緊關之地)"

이라 한 점, 『동국여지지』에 "해로 요해지지(海路要害之地)"라 한 것은 울두목[咽喉之地]을 이른 것이다. 망금산성은 이 울두목을 지키기 위한

관방성으로 통일신라시대 축성 이후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관방유적으로 기능을 한 까닭에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한편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유인하여 명량해협(울돌목)에 모아놓고, 이 산에서 아녀자로 하여금 떼를 지어 강강수월래 놀이를 하게 했고,

이에 넋을 빼앗긴 왜병과 적선 300여 척을 섬멸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망금산의 명칭 유래는 알려진 것이 없다. 한자로 바랄 망(望)자와 쇠 금(金)자를 쓰는데, 진도울돌목을 건너오는 길목에 있고, 백제 때 군사가

주둔하였으며, 토성이 축조된 것으로 보아 망을 보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화산암 산지로 울돌목 해안을 끼고 있어 해안은 암석해안이 돌출되어 있고, 해안 쪽이 내륙 쪽보다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절대고도는 높지 않지만

울돌목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에 위치하고 있는 망금산명량해협이 한눈에 보이는 위치에 있다. 현재 울돌목진도대교 쌍다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진도대교 바로 건너에 위치하고 있는 진도의 관문산이다. 절대적 위치는 북위 34°33′59″, 동경 126°18′7″에 자리하고 있다. 진도읍에서 직선

거리로 약 11km 정도이며 20분 거리에 있다.

망금산 동편 산등성이에 이순신 장군이 적을 위협하기 위해 강강술래를 하게 했던 터가 있고, 석성과 토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망금산성은 정상에서

동남쪽 500m 밑의 허리에 있는 작은 봉우리(67m)에 있는 성이다. 성의 둘레는 460m이다. 이 성은 서고동저형(西高東低型)의 테뫼식 해협 관방성으로

도랑을 판 흙과 막돌을 섞어 쌓고 외벽을 깎아 접근이 어렵도록 되어 있다.

현재 이곳에는 울돌목진도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산책로 등 공원화되어 있다.

 

 

여기서 수백장을 찍었는데 그중 일부만 포스팅 한다.

 해마다 명량해협축제가 전라남도주관으로 해남과 진도 일대에서 열린다.

그때 이 진도대교는 차량이 통제되고 축제의 중심장소가 된다.

 

 

 

 

 

 

 해남땅에 있는 전라 우수영

 

 

 

 

 

 

 

 

 

 


 

 

 

 

 

 

울돌목 (명량해협)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

명량해협울돌목이라고도 한다. 명량해협 충무공의 3대 해전 중의 하나인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이다. 전라남도 해남

진도 간의 좁은 해협인데, 바다의 폭은 한강 너비 정도의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 시속인 11노트에 이르며 젊은 사나이가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물소리가 크고, 거품이 일며 물이 용솟음쳐 배가 거스르기 힘든 곳이다.

명량해협은 바다라기보다 홍수 진 강물로 보일 정도로 물길이 소용돌이쳤다가 솟아오르면서 세차게 흘러내려 그 소리가 해협을 뒤흔들 정도이다.

거기에다 어느 때는 아주 깊은 음정으로 크게 우는 소리를 내는데, 이를 두고 사람들은 “바다가 소용돌이쳐 운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울돌목

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명량해협은 ‘울돌목’의 한글 표기를 대신한 한자 표기이다.

명량해협은 한반도 남쪽 땅 끝인 해남과 섬지역인 진도 사이에 끼여 있는 좁은 바다를 말한다. 바다 폭이 평균 500m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으로는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학동리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사이의 바다 폭이 가장 좁다. 그 폭은 평균 300m 안팎이다.

명량해협은 가장 좁은 지점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팔 모양처럼 점차 넓어진다. 그래서 이 지점은 명량해협의 물목이 된다. 명량해협은 폭이 좁을 뿐

아니라 해구가 깊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흐르는 물살이 여기에 부딪쳤다가 솟아올라 물소리가 우렁차다. 바닷물은 해협을 하루에 네 번씩 교차하는데,

아침 무렵에는 남동쪽인 완도 방면에서 목포 방면인 북서쪽으로 흐른다.

해남에서 77번 국도, 18번 국도를 타고 진도 방향의 표지판을 따라 오면 만날 수 있다. 근처에 우수영 관광지, 진도대교 기념 공원, 해남 충무사가 있다.

명량해협은 빠른 물살이 형성하는 청정해역 덕분에 관광, 청정 농수산물 생산지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1984년 명량해협에 다리가 놓임으로써 진도

한반도의 최남단이 되었는데, 이 다리가 바로 진도대교이다. 진도대교의 준공으로 인해 진도는 아름다운 낙조와 야경, 다리 아래의 울돌목 물살이

장관을 이루어 진도의 특산물, 문화예술과 함께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외국인을 포함하여 연간 약 260만 여 명의 관광객이 찾는 국제적 관광명소가 되었다.

진도는 반도의 서남쪽 모서리에 위치하여 작게는 서남해 섬지역과 섬지역, 그리고 크게는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

한국의 전근대사에 있어서 진도와 한반도의 서남해안을 가로지르는 해로는 역사․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했고, 진도지역으로 하여금 남다른 역사적

경험을 하게 하였으니, 명량해협을 무대로 한 이순신의 명량대첩이 그것이다. 이 대첩을 통해 조선군은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할 수 있었다.

명량해협을 포함한 한반도의 서남부를 경유하는 해로는 고대로부터 중국, 한반도, 일본을 연결한 국제문화의 주요 이동로였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에는 조운로(漕運路)로써 그 의미가 돋보이는 바닷길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진도의 입지적 조건으로 인해 진도의 문화는 중층성과 다양성을

지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진도의 문화는 남해안 문화와 서해안 문화가 어떻게 교류하고 교차, 융합되었는지를 살필 수 있게 한다.

가장 빠를때는 해류가 14노트까지 흐른다고 한다. 웬만한 강보다 빨리 흐르는 것이다.

이때는 조류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흐르는데 화물선 한척이 아주 힘겹게 해류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노란 표시는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위한 표시이다 저 안족으로만 배가 안전하게 다닐수 있다고 한다.

 

 

 

 

 벽파진쪽

 

 

 

 해남쪽

 

 진도 녹진쪽. 멀리 다도해의 선들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진도 녹진

 

 

2010명량대첩축제가 2010년10월 8일 금요일부터 10월 10일 일요일까지 해남군 우수영관광지와 진도군 녹진관광지 일원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