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강원

[화천]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아픈역사를 간직한 화천수력발전소

by 柔淡 2011. 1. 6.

화천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화천수력발전소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서 6.25전쟁전에는 북한지역 이었다가 전쟁중에 서로 뺏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우리가 최종적으로 차지했고 1968년까지 계속 건설되어 지금까지 발전을 하고 있는 사연이 많은

발전소다. 

 

북한강 수계를 이용한 최초의 댐 수로식 수력발전소로, 양수발전소를 제외한 최대의 시설용량과 담수능력을 갖추고 있어

수도권지역의 용수공급과 홍수조절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총시설용량 10만 8,000kW(2만 7,000kW×4기)로, 연간 3억 2,600만kWh의 전력을 생산한다. 댐의 형식은 콘크리트 직선중력식

일류형(溢流型)으로 높이 81.5m, 길이 435m, 총저수량 10억 1,842만 6,000t이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 6월 한강수력전기주식회사에 의해 총설비용량 8만 1,000kW의 시설계획으로 착공된 이후 1호기는 1944년

5월에, 2호기는 같은 해 10월에 완공되었고, 3호기는 건설공정의 약 30%만, 4호기는 기초 공사만 완료한 미착수상태에서 8·15

해방이 되었다.

그러나 이 발전소는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1948년 5월 단전 후 시설의 일부만을 가동해 강원도 북부지방에만 전력을 공급했고,

후에 시설이 불필요하다고 하여 2호기를 장진강발전소에 이전할 계획이었다. 6·25전쟁중인 1950년 10월 발전소를 수복했으나

중국군의 침입으로 일시 후퇴했다가 1951년 4월 완전히 수복했다.

1952년 1호기의 3만kW 발송전을 목표로 복구공사에 착수하여 그해 11월에 준공했다. 기기의 파손과 손실이 가장 심했던 2호기는

1953년 5월 댐 문비(門扉)공사, 터널 수압철관로공사, 수차발전기 옥외변전시설 등 본격적인 복구공사에 착수하여, 1954년 7월에

완공했다. 1·2호기의 복구 완료로 당시 남한 평균발전량의 50%를 생산하여 계통사고시 정전시간을 단축했고, 경인지구의 중요

산업시설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되었다.

1944년 이후 건설이 중단된 3호기는 1955년 7월 착공하여 1957년 11월에 준공했고, 4호기는 1966년 7월 공사에 착공하여 1968년

6월에 준공했다. 댐의 건설로 형성된 유역면적 3,901㎢의 인공호수인 파로호(破虜湖)는 6·25전쟁 당시 한국군이 중국군과 북한군을

격파하여 수장시킨 전승지로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파로호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호반에는 대통령이 친필로 썼다고 하는 높이 1.55m의 비가 있었으나 최근에 조성된 전망대로 옮겨졌다.

 

 댐에서 내려다본 전경

 

6.25전쟁당시 중공군으로부터 발전소를 탈환한 켈로부대 승전비

 

 

 

이승만 대통령 친필인 파로호 휘호

 

 

 

 

 

일제가 처음지었을때 명명한 대붕제.

 

 

 

그때의 참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파로호는 고요하기만 하다.

 

 

 

 

 

 

 

 

 

파로호선착장

 

 

 

댐과 발전소는 거리가 꽤 멀다. 배수관으로 물을 흘려보내 발전기를 돌린다.

다시 차를타고 북한강 변에 있는 발전소로 내려와 설명을 듣고 내부를 둘러본다. 

 

이 기계가 돌아가면서 발전을 한다.

 

이런 최신의 기계도 고사를 지내는 모양이다.

 

최초 공사를 1939년에 시작해서 1968년 4호기가지 설치를 완료했으니 40년동안 건설된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잘 쓰고 있다.

 

 

 

밖으로 나가니 발전된전기를 사용처로 보내는 변전소가 있다.

 

 

 

 


1950년대초에는 이발전소가 5만 KW의 발전용량으로 우리나라 전체 발전량의 50%를 담당 했었다는데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발전설비용량은 7,600만 KW로 그때보다 760배 성장한 것이다. 비약적인 발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