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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합천]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의 꽃 - 대장경 이운행렬 퍼레이드를 보다

by 柔淡 2011. 9. 28.

1011년부터 시작해 1087년까지 무려 77년 동안 제작해 완성되었던 초조대장경은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에 몽고군의 방화로 그만 불타 버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5년뒤인 1236년에 다시 본격적으로

대장경 간행 불사를 추진하여 1251년에 그 완성을 보게 되니, 16년에 걸친 이 큰 불사의 결실이 바로

지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이다.

 

그런데 지금의 8만대장경은 처음에는 강화도의 선원사에 보관되어 오다가 조선이 개국하면서

태조 이성계에 의해 지금의 서울시청앞에 있던 지천사라는 사찰에 보관하게 된다.

그러다가 다시 서울 지천사에서 합천 해인사로 옮겨지게 되는데 도로도 없고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당시에 82,140권의 부피에 무게만 280톤이나 되는 방대한 량의 대장경을 어떻게 옮겼는지

그게 늘 궁금했었다.

 

이번 축전에서 그에 대해 조금 알수 있었는데

 (축전 홈페이지 인용 http://www.tripitaka2011.com/sub/04_01_03.jsp)

 

“...임금이 용산강(龍山江)에 거둥(擧動)하였다. 대장경판을 강화(江華)의 선원사(禪源寺)로부터

운반하였다. (중략) 검교참찬문하부사 유광우에게 명하여 향로를 잡고 따라오게 하고, 오교(五敎)ㆍ

양종(兩宗)의 승려들에게 독경하도록 하였으며, 의장대가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 인도하게 하였다...”『태조실록』

 

태조실록에 나온 위의 기사는 강화에 있던 팔만대장경이 당시 서울로 옮겨진 것을 말해주고 있다. 서울에서

다시 해인사로 옮긴 과정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조선왕조실록』 정조 원년 정월조의 기사에는

 “경상감사에게 명해 해인사의 대장경을 인쇄하는 승려들에게 공양했다.”고 언급하고 있다.

팔만대장경이 서울에 도착한지 9개월 뒤의 기록이므로, 대장경은 그 사이에 해인사로 옮겨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오늘날의 4톤 트럭 70대가 동원되어야할 만큼 방대한 양의 경판을 그 먼 거리까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옮겼을까?


운반 과정에도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육로 이동설이다. 해인사 대적광전에는 대장경판을 운반하는 장면을 그린 벽화가 있다. 운반 행렬의 맨 앞에는

동자가 향로를 들고 길을 내고, 그 뒤를 스님들이 독경을 하며 행렬을 인도한다. 스님의 뒤로는 소중하게 포장한 경판을

소달구지에도 싣고 지게에도 졌는가 하면, 머리에 이기도 한 채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강화도를 떠나 한강에

다다른 배는 다시 남한강을 거쳐 충주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해인사의 벽화에서처럼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육지로

운반한다. 행렬이 낙동강변에 이르면 대장경을 다시 배에 옮겨 싣고 고령까지 이동하여 육로로 해인사에 들어간다는 추정이다


둘째는 해로 이동설이다. 실록의 태조 7년 5월 12일 기사에는 “임금이 서강에 행차해 전라 조운선을 시찰했다.”고 되어있다.

이는 대장경판이 서울에 도착한지 이틀 뒤의 기록이다. 조운선이란 조세로 거둔 쌀을 운반하던 선박으로서 깊이가 얕은 강을

따라 내륙으로 이동하기 쉬우며, 해변을 항해하기에 유리한 구조였다.

1척 당 경판 5천 장을 실을 수 있어, 총 20척 정도면 팔만대장경을 운반하는데 충분하였다. 따라서 기록 속의 조운선은 이틀 전

서울에 도착한 팔만대장경의 운송수단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강에서 서해 바닷길로 나온 다음 남해를 돌아 낙동강 줄기인

고령에 이르러 배를 대고, 이곳에서 해인사까지는 육로로 운반하였을 것이다.

방대한 양의 팔만대장경을 운송하는 길은 멀고도 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하여 10리, 5리씩 릴레이 하듯

머리에 이고 지고 대장경을 현재의 장소로 운반하였다. 팔만대장경판 자체의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운의 뜻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해인사에서는 팔만대장경 수호 정대불사를 열고 있다.

 

그런데 축제장에서도 매주말 마다 정해진 시간에 이운행렬을 볼수가 있고 사전에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이운행렬에 참여할수도 있다.

지금부터 그 이운행렬을 감상해보자

 

매주 토, 일요일 오후세시부터 30분동안만 이운행렬이 재현된다.  

 

 대장경판을 옮기는 행렬 앞에는 향로를 든 동자와 함께 스님들이 독경을 하며 길을 열었고, 그 뒤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포장한 경판을 소달구지에 싣거나 지게에 이거나 머리에 이고 행렬을 이루어 나아갔을 것이다

 

이운행렬 재현 퍼레이드도 그렇게 진행된다.

 대장경 이운행렬을 호위하는 군사들과

 하나에 3~4kg정도되는 판각을 머리에 인 부녀자들

 

 

 지게에 진 남정네들

 

 그리고 흥을 돋구고 피로를 풀어주는 농악대원들

 다시 지게꾼 남정네들

 이운행렬을 찍기위해 옥상에 올라간 사람들

 소달구지에도

 개막식행사가 열린 천년의 마당을 한바퀴 돌고 마당안으로 들어온다.

 

 

 

 

 

 

 

 

 

 

 

500여년전 가로 69cm, 세로 24cm, 무게 3~4kg인 대장경판 82,140개를 이런식으로 옮겼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천년의 마당 안으로 들어와 걸판지게 한번 놀고 다시 밖으로 향한다.

 

 

 

 

 

 

 

 

 하늘맑은 초가을 날에 1년에 한번보기 어려운 대장경 이운행렬을 보는 행운을 누렸으니 정말 복받은 날이었다. 

혹 이운행사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홈페이지에서 미리 신청하면 된다.

축전 행사장에서 볼거리, 즐길거리가 아주 많지만 나는 그중에서 이운행렬 퍼레이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토, 일요일에 행사장에 가시는 분들은 이운행렬을 꼭 보시고 오세요.

 아래 그림을 누르면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홈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그동안 팔만대장경에 대해 교과서에서 배운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 대장경 축전에 가서 참여하고 체험해보니

팔만대장경은 우리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문화유산이라는걸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잘 보존해서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천년만년 이어져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