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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광진구]가을이 성큼 다가선 한강변의 절경, 아차산

by 柔淡 2011. 10. 4.

10여년넘게 등산을 다니면서도 아차산을 이번에 처음 가봤다.

등잔밑이 어둡다고 하는데 이런걸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10월 1~3일 황금연휴, 두달여만에 초등 동창들과 산행을 했다.

10시에 광나루역에 만나 아차산 생태공원을 지나 아차산 - 용마산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원점회귀 산행이다.

세명이 산에 오르면서 막걸리 세병을 배낭에 넣고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명당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마시니 신선 놀음이 따로 없다. 왕복 세시간이면 끝날 산행인데 막걸리도 마시고 쉬며

놀며 걸었더니 여섯시간이 걸렸다.

연휴 첫날, 가을햇살을 즐기려는 등산객들로 아차산 전체가 시끌벅적하다.

동네 뒷산이라 그런지 그냥 간편한 차림으로 산행을 나선 사람들이 많다. 

 

아차산 소개

높이는 287m이다.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에께산·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기지(京畿誌)》

양주조에 보면 화양사(지금의 영화사)가 악계산(嶽溪山)에 있다고 되어 있다.

현재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는데,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

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지역과 용마봉 등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성계의 휘(諱)가 단(旦)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서 旦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고치면서 단(旦)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且)’자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씨를 고쳐 썼다고 한다

그밖에 산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

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

는데,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버렸고,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나온 광주산맥의 끝을 이룬다. 온달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져오는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짜리 공기돌바위와 온달샘 등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에서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최근에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로 보아 아차산이 고구려 유적지였다는 설이 설득력있다는

결론이 나온다고 한다. 산행을 하면서 보니 복원된 성곽이나 망루를 전부 고구려 유적지로 표기해 놓았다.

 

 아차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구리 코스모스 축제장. 이번 주말에 축제를 한다고....

 광나루역에서 생태공원으로 가는 길목 여기도 벽화작업이 한창인데 나이 든 어르신들이 그림을 예브게 그리고 계시다. 

 생태공원 입구

 능선에 올라서니 한강변의 조망이 시원하다.

 

 멀리 남산도 보이고

 뚝섬도 보인다.

 어린이 대공원도 좌측에 보인다.

 북한산, 도봉산

 활엽수는 서서히 가을빛이 감돈다.

 오전에 오를대 본 구리 한강변 코스모스 공원

 

 정희 친구가 이렇게 맛있는 점심과 과일, 족발을 싸왔고 나는 그저 제주 오메기떡 한조각만 싸가서 먹기는 내가 다먹었다. 

 

 용마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북

 활엽수들은 벌써 가을빛으로 물들었다. 

 용마산에서 만난 길고양이.

 코스모스 고원은 오후엔 휴일을 즐기러온 살람들로 주차장이 꽉차있다.

 들국화와

 산부추도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산행우 아차산 쉼터 카페에서 감자전으로 마무리.

  

이렇게 해서 처음 가보는 아차산 산행을 즐겁게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