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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남원]우리 현대사의 아픈기억, 지리산지구 전적비

by 柔淡 2012. 6. 1.

탐방안내소 내부를 돌아보고 2층에서 나오면 바로 지리산 지구 전적비가 있다.

 

이 기념관은 1979년 11월 23일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입구에 국방부가 조성한 것으로

연건평 475㎡, 총소장품 396점, 지상 2층 건물이었으나 노후되어 철거되고 탐방안내소가

신축되면서 현재는 지리산 전적기념비와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로 내려준 '충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비석만이 남아있다.

1983년 10월 10일 관리권이 남원군으로 이관되었다가 전라북도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적기념관은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 이후 지리산에 숨어든 무장공비와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 벌인 지리산지구 공비토벌 전적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기념비와 2개의 전시실이 있었으며,

그 중 기념비는 토벌 작전중 전사한 6,333주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본래 광한루원 경내에

있었으나 1987년 6월 기념관으로 옮겨졌다. 현재 탐방안내소의 전시실에는 당시 빨치산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과 무기류·작전도·기록화·모형물·사진 중 소량 만이 전시되어 있다.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은 6·25전쟁 후 월북하지 못하고 빨치산으로 남아있던 지리산지역의 공비들을 토벌하기 위한 세 차례에 걸친 군·경 합동작전이다.

1950년 9월을 기점으로 국군과 유엔군의 총반격작전이 이루어지자 미쳐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의 낙오부대와 낙오병들이 대량으로 발생하였고, 이들 대부분은 아군의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일부는 각 지역의 산악지대로 잠적하여 그곳에서 현지의 부역자 또는 공비들과 합세하여 새로운 비정규전 조직을 구성하고 전쟁기간중 후방에서 국군을 교란했다.

1950년 10월경, 공비(共匪)들은 모두 2만5000명 정도였으며, 이들은 남부군단, 제526군부대, 인민유격대 남부군단 전북도사단, 전남도당 유격대 및 제주도 인민유격대로 크게 나누어진다. 이중에서 지리산을 거점으로 활동하던 부대가 남부군단(南部軍團)이다.

이들은 지리산이 북한군의 점령지역에 있었던 기간중에는 병력 보충부대의 노릇을 했으나 지리산이 고립되자 산악지역을 따라 평강 일대로 이동하여 11월 중순경에 재편성을 한 후, 12월 21일 재차 태백산맥을 타고 후방지역 내려와 12월 말경에는 충북 단양에 도착하였다.

그 뒤 주변지역을 이동하며 활동하다가 제천에서 재편성하고 부대 명칭을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단으로 개칭하였다. 한국군은 이들을 소탕하기 위해 군·경 합동으로 1950년 10월 4일부터 1953년 5월 1일까지 만 31개월에 걸친 토벌작전을 전개하였다. 지리산지구에서는 제11사단, 백야전전투사령부 산하 수도사단·제8사단·제1사단 등이 세 차례에 걸쳐 토벌을 했다.

이후에도 지리산을 비롯한 삼남지역에서 공비의 활동이 계속적으로 나타나자 1953년 12월 1일 박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박전투사령부와 한전투사령부, 남부지구 경비사령부로 이어지는 대대적인 공비토벌로 인해 1956년 12월 31일까지 대부분이 소탕되어 그 후로는 잔여 공비의 활동은 사라졌다.

 

이 작전은 이태의 남부군이라는 소설로 잘 알려져 있다. 

 

 

 

 

 

 

 

 

 

 

 

 

 

 60여년전의 슬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뭇심한 예쁜 봄꽃들이 여기저기 피어있다.  

 

봄맞이꽃

 조팝나무

 제비꽃

 제비꽃의 끈질긴 생명력

 봄구슬봉이

 으름꽃, 큰것은 암꽃이고 작은게 수꽃이다.

 

 

 

 매자나무

 

 꽃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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