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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춘향전 이몽룡도령의 실제모델이 봉화출신 성이성 이었다니 - 가평리 계서당

by 柔淡 2012. 7. 30.

물야면 오록리에서 봉화읍 닭실마을로 가는길, 20km도 안남은 그리멀지 않은 길인데 날이흐려 일찍 어두워

진다. 그런데 가다보니 길가에 "춘향전 이몽룡 생가 계서당"이란 안내간판이 여러번 보인다.

올봄 춘향제를 포함해서 남원 광한루에 두번이나 다녀왔던지라 궁금증이 동한다.

안내판을 따라 차를몰고 들어갔다. 물야면 가평리에 조선시대 문과 계서 성이성의 종택이 있는데 그가

춘향전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내용이 종가 담벽에 걸려있다.

 

자료를 찾아보니 연세대 국문과 설성경 교수가 10여년 전부터 연구결과로 발표하여 알려진 내용이었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과 기생의 딸 춘향이 광한루에서 만나 정을 나누다가, 남원부사가 임기를 끝내고

서울로 돌아가자 두 사람은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이별하고, 다음에 내려온 신관(新官)이 춘향의 미모에

반하여 수청을 강요하지만 춘향은 일부종사(一夫從事)를 앞세워 거절하다 옥에 갇혀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후 과거에 급제한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신관 부사를 탐관오리로 몰아 봉고파직(封庫罷職)시키고 춘향을

구출하여 정실부인으로 맞아 백년해로를 한다.'

 

설성경 연세대 교수는 "실존인물을 뒷받침하는 내용으로 필원산어의 한 대목인 남원 땅에서 행하는 암행어사

출두사건(金樽美酒千人血/ 玉盤嘉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歌聲高處怨聲高)의 인물상이 수록된 문헌자료를

근거로 내력과 그 당시의 시대상 등을 고려할 때 이몽룡은 봉화 출생인 성이성"이라고 밝혔다.

또 "봉화군 물야면 가평리 출신의 성이성이 남원부사를 지낸 아버지와 함께 13~17세 시기에 남원에 살았으며,

이후 암행어사가 돼 호남지역을 두루 돌아다녔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라도 지역에서 떠돌던 이야기를 담은 몇몇 문헌에서 성이성의 행적이 이몽룡의 행적과 흡사한 부분이

나타나는 등 '성이성=이몽룡'은 거의 기정사실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 교수는 1999년 일본과 국내에서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란 주제의 연구 논문을 통해 이몽룡이 봉화 출신인

성이성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완전히 고증된것은 아니지만 매우 흥미로운 내용이었다. 성이성이 소년기에 실제로 남원부사인 아버지를 따라

남원에서 살았고 암행어사로 호남지방에 세번이나 파견되었으며 청백리로 추증된 인물이었으니....

 

이집은 소나무 숲이 우거진 동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집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 계서 성이성(1595∼1664)

이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지었다고 전한다. 성이성은 문과에 급제한 후 6개 고을의 수령을 지냈고, 3차례나 어사로

등용되었을 정도로 청렴한 관리로 이름이 높았다.

사랑채는 후에 넓히거나 다시 지은 것으로 추측된다. 아래쪽 마당 끝에 대문간채를 두고 그 북쪽 높은 곳에 사랑채와

안채가 하나로 연결되어 'ㅁ'자형 집을 이루고 있다. 대문간을 들어서면 비교적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맞은편 높은 곳

서쪽에 중문간채가 있다. 동쪽에는 사랑채가 자리잡고 있고, 사랑채 서쪽의 중문으로 들어서면 안채가 있다.

또한 동북쪽에 따로 담장을 둘러 사당을 배치하였다. 이곳의 안채와 사랑채는 다른 곳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

안채는 도장방이 많은 것이 특징이고, 사랑방은 대부분 홑집으로 구성하는데, 이 집은 겹집으로 만들어 안채의 날개집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안채부분은 약간 변형은 되었지만 경북 북부지방 'ㅁ'자 민가의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집으로 주택발달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안채전경

 

 

 행랑채

 

 

 굴뚝부분이 사랑채다

 

 성이성이 춘향전의 이몽룡 모델이었다는 안내문 

 

 안채 대들보

 

 

 

 관련 신문기사들

 

 현재까지 종손이 살고 있는 살림집이다.

 사랑채, 굴둑 옆의 나무판은 간이변소라고 한다.

 

 사람이 웃는 모습의 사랑채 아래 담벽

 

 

 사당 

 

 

 

 종부께서 따라주신 헛개나무차

 

 계서당 앞 들판

이게 역사학계에서 완벽하게 고증된다면 계서 성이성은 참으로 멋진 인물이고 후손들은 큰 자부심을 가져도 될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