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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영주]우리나라 5대사찰 부석사의 또 다른 보물들 - 삼층석탑, 조사당, 응진전 등

by 柔淡 2012. 7. 27.

2007년 가을에 왔을때는 부석사 입구의 은행나무가 아름답다는 것과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만 알고 왔기에

무량수전 뒤쪽의 조사당과 자인당이 있는지도 모르고 지나쳤었다.

이번에는 부석사의 모든 국보와 보물들을 눈으로 보고 사진도 찍겠다는 욕심을 내고 갔으나 아쉽게도

성보박물관이 문을 닫은날이기에 성보박물관에 전시된 국보와 보물들은 보지 못했다.

 

먼저 무량수전 동쪽에 있는 보물 249호 삼층석탑이다.

무량수전의 동쪽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한 신라시대의 3층 석탑이다. 이 탑은 자인당의 석불들과 함께 이웃

절터에서 옮겨진 것이다. 2층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쌓은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이다. 지대석과 하층

기단의 중석은 하나의 돌로 이루어졌는데 모두 8매석으로 짜였고중석 각 면에는 2개씩의 우주와 탱주가 새겨져

있다. 상층 기단의 중석은 각 면이 1매의 판석으로 짜였고 각 면에는 위에는 2단의 탑신 받침이 있다. 그 위로

탑신부가 올려져 있고 옥신석과 옥개석은 각각 1매석으로 구성되었다. 각층의 탑신에는 각기 우주만 있을 뿐

조각을 새기지 않았다. 옥개석의 받침은 각층 5단이고 낙수면의 네 모서리는 약간 반전되었다. 3층 옥개석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그 위의 상륜부엔 현재 노반과 넓적한 복발만이 남아 있다.

 

본래 탑은 법당 앞에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부석사 삼층석탑은 무량수전의 동쪽에 서 있어 궁금중을

자아낸다. 아마도 동쪽을 향해 안치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 방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삼층석탑은 부석사 창건

당시 조성된 것으로 높이가 5.26m, 기단폭이 3.56m 이다.

 

 

 

 

 

 그리고 다른 국보와 보물들이 조사당과 자인당으로 올라가는길

 신록으로 쌓인 오솔길이 고즈넉하다.

 

 

 

취현암은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다.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하고 부석사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사당 (국보 제19호)
조사당은 무량수전에서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산 중턱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작은 전각으로 측면 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진입하여 소박하고 간결한 느낌을 준다. 지붕은 맞배 형식으로 간단해 보이지만 넉넉하게 뻗어 나와 결코 작은 건물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1916년의 해체 공사 때 발견된 장여 위의 묵서에 의하면 조사당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원응 국사가 재건한 것이다. 조선 성종 21년(1490)에 중수하고 성종 24년(1493)에 단청하였으며 선조 6년(1573)에는 서까래를 수리하였다

   

선비화 골담초인데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놓은게 아직까지 자라고 있다고 한다.

 

 

 

 

 

 다시 응진전과 자인당으로 간다.

 

단하각

최근세에 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남도리 맞배집으로 응진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단하'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을 쪼개 땟다는 단하소불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 선사를 모신 것이라면 선종과 연관이 있는 전각이다. 그러기에 도량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선방 근처에 지었는지도 모른다

 

 응진전

무량수전 영역의 북편 위쪽에 떨어져 있다.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1976년에 번와 보수하였다. 이 건물의 공포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적인 익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는 내부에 석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고졸한 십육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했다
자인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가여래이고

좌우는 비로자나불(보물 제220호)이다.

 좌우비로자나불은 보물 220호다.

 

 

 

 이제 다시 무량수전쪽으로 내려와 부석을 지나 삼성각쪽으로 간다. 

 

칠성, 독성, 산신 세 분을 한 곳에 모신 전각으로 무량수전 서쪽 석축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삼성각은 우리나라 재래의 수(壽), 복(福), 재(財)의 삼신 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현재의 삼성각은 원래 축화전(祝花殿)이라 불렀는데 영조 때 대비의 원당으로 지은 건물이라 한다. 1979년의 부수 때까지는 원각전(圓角殿)이라 하였고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모셨었다.
장대석으로 4단 쌓은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을 세웠는데 지붕은 팔작 형식이다. 그리고 기단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다.

 

 설법당

범종각

만세루 위쪽 석축단의 좌우에 있는 건물들로 1980년의 보수 정화공사 이후에 신축한 것이다. 범종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기둥만 세워 개방하였는데 기둥 사이는 홍살로 막았다. 막돌로 만든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모서리는 원형 주좌를 가진 방형 초석을 사용하여 특이하다

 

 

 

 지장전

 

 부석사 박물관. 이날은 아쉽게도 문을 닫았다.

 마지막으로 부석사를 나오면서 다시한번

 

  보면 볼수록 참 아름다운 절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