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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영주]태백과 소백사이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절집, 부석사로 가는길 1

by 柔淡 2012. 7. 27.

 소수서원과 선비촌을 돌아보고 부석사로 간다.

2007년 11월애 왔었으니 5년만에 다시온다. 그때는 가을이어서 부석사 상징인 일주문부터 은행나무 단풍이

참 예뻤었는데....

 

신라 문무왕 16년(서기 676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화엄종찰 부석사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5점, 보물6점, 도 유형문화재 2점 등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10대 사찰중

하나입니다. 사찰 앞으로 펼쳐진 자연경관을 품안에 끌어안은 모습은 마치 부처님의 온화한 자비심처럼 모든

이의 마음을 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합니다.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으뜸 사찰입니다.

대사가 당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교학

(華嚴敎學)을 펴기 위해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절은 신라 화엄종의 도량(道場)임에도 불구하고 본전인 무량수전에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주불

(主佛)로 모셨고, 무량수전 앞에 안양문(安養門)을 세웠으니 『安養』은 곧 『極樂』을 일컬음이니 이 절은

바로 땅 위에 극락세계를 옮겨 놓은 격이 되는 것입니다.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무량수전(無量壽殿)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돌'이라 부른데서 연유하였다고 합니다. 1916년 해체 보수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3년(1377) 조사당(祖師堂)이 재건되었다고 적혀 있습니다.

경내에는 신라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石燈)(국보 제17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보물 제220호), 삼층석탑

(三層石塔)(보물 제249호),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 제255호)등이 있고, 고려시대 유물인 무량수전(無量壽殿)

(국보 제18호), 조사당(祖師堂)(국보 제19호),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제45호),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

(국보 제46호), 고려각판(高麗刻板)(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圓融國師碑)(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삼층석탑

(三層石塔)(도유형문화재 제130호) 등이 있습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전시관(遺物館展示館)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2007년 11월3일 가을 부석사 진입로 풍경

부석사 주차장의 연못과 분수

 

 

 

 

 

부석사가 태백과 소백사이에 자리잡았다는 안내문

단풍은 아니지만 짙푸른 신록이 아름답다.

 

 

자두나무

일주문

멋진 은행나무길

 

 

과수원의 탱자나무 울타리

 

 

 

보물 255호 부석사 당간지주

부석사 경내로 올라가는 최하층의 좌측 노변에 위치해 있는데 양 지주가 1m간격으로 동서로 상대해 있다.

전면에는 별다른 조식이 없고 다만 양쪽 모서리로 모를 약간 죽였다.

전후 양 측면으로는 20cm폭으로 두 줄의 음각선대를 테두리에서 5.4cm 간격을 두고 넣었다.

지주 정상부의 바깥쪽 모서리는 호선을 2단으로 깎아내었고 안쪽에는 간구를 내었는데 장방형이다. 양지주 사이에는 간주를 받는 대석이 남아있는데 사각형의 하대 위에 원형으로 테를 만들고 안으로 지름 30cm의 원공을 두어 당간이 끼워지도록 하였다. 원형의 테 밖으로는 몰딩과 연꽃무늬를 새겼다.

간결, 단아해 보이게 비교적 가늘고 긴 편이면서도 아래와 위의 두께에 다소 차이가 있어 안정감을 지녔다. 조성년대는 부석사가 창건된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천왕문

 

 

 

 

 

 

 

봉황산 부석사의 편액이 붙어있는 범종루

 

 

 

부석사에는 삼층석탑이 두개있는데 이건 아래쪽에 있는 삼층석탑이다. 무량수전 오른쪽에 있는 삼층석탑과 쌍탑이다.

 

 

 

 

 

 

부석사 석축

부석사에 한번쯤 다녀온 사람들은 누구나 석축과 돌계단을 특별히 기억한다. 이 석축은 부석사를 창건할 당시 비탈을 깍고 평지를 고면서 만든 것이다.
물론 석축의 목적은 사찰을 짓기 위한 땅다짐에 있지만, 석축 돌계단 그 자체에도 상징하는 바가 있다. 즉, 극락에 이를 수 있는 16가지 방법 중 마지막 세 방법인 3품

3배관의 9품 만다라를 형상화한 것이다.

천왕문에서 요사체로 오르는 계단이 하품단이며, 여기서 다시 계단 오른 범종루까지가 중품단, 범종루에서 세 계단을 올라 안양루를 지나 무량수전 앞 마당에 다다르는데, 마지막 계단으로 상품단이다. 이렇게 부석사를 찾는 이는 상징화된 돌계단과 석축을 지나면서 극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반듯하게 다듬은 규격화된 돌들로 석축을 쌓지 않고, 돌의 자연 생김새를 그대로 이용해 잘 짜맞추어 쌓았다는 것이다.

 

 

범종각

 

응향각

장경각

이제 부석사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탑들을 둘러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