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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영주]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자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 3 - 취한대와 경자바위

by 柔淡 2012. 7. 24.

소수서원이 더욱 눈에 띄는것은 바로 옆에 흐르는 죽계천과 건너편에 있는 취한대라는 정자 때문인것 같다.

 

죽계천은 멀리 소백산 자락 초암골에서 발원한 계곡으로 주위의 바위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이경치를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白雲洞)

이라는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다.

 

도산서원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치던 퇴계 이황선샌의 풍기군수로 재직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곳이 취한대다.

 

취한대(翠寒臺)는 죽계천 가에 세워진 정자다. 퇴계 이황 선생이 경자바위 윗부분에 터를 닦아 대를 쌓고 손수

소나무, 대나무, 잣나무를 심고 ‘취한대’라 이름 한 것을 본 받아 1986년에 신축한 건물이다. ‘취한대’란 이름은

푸른 연화산의 산 기운과 맑은 죽계천의 시원한 물빛에 취하여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긴다는 뜻에서 옛 시

송취한계(松翠寒溪)의 비취 ‘翠’와 차가울 ‘寒’자에서 따온 것이다.

 

또한 경자바위에는 아주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경(敬)”자는 유교의 근본정신인 “경천애인(敬天愛人)”의

머리글자이며, 세조 3년(1457) 단종복위운동 실패로 참절당한 제 의사들의 시신을 죽계천 백운담에 수장시킨 후로는

밤마다 영혼들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므로 유생들이 밤 출입을 꺼리자, 주세봉선생이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글자 위에

붉은 칠을 하여 제를 드리니 그때부터 울음이 그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흘린 의사들의 피가 죽계천을 따라 이곳에서 약 7km 떨어진 동네 앞까지 가서 멎었다고 해서 지금도 동네 이름을

 “피끝마을”이라고 부르고 있다.

 

 취한대의 절경

 처음 진입할때 소수서원을 둘러보지 않고 취한대로 건너갈수도 있다.

 

 경렴정에서 내려다 본 취한대

 

 

 

 

 백운동 경자바위

 

  

 소수서원에서 선비촌으로 가는길

 서원 담장 밖의 연못

 선비촌으로 가는 다리위에서 내려다본 풍경

 

 

 

 

 죽계천을 건너 옆에서 본 취한대. 소수서원 입구와 이곳의 소나무 숲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숲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취한대의 다양한 모습들

 

 

 

 

 취한대의 소나무숲은 퇴계선생이 직접 심은 소나무의 후손들이다. 퇴계선생이 심었던 소나무 들은 수령이 다해 죽었고 그 후손인 나무들인 것이다.

 서낭당

 

 

 

 서원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떠날 생각이 없었다.

 

 

 

이제 바로 옆의 소수박물관과 선비촌으로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