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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봉화]500년전에 지어진 영남 최고의 정원, 청암정

by 柔淡 2012. 8. 1.

궁궐을 제외한 조선시대 최고의 정원을 꼽으라면 대부분 자연과 인공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담양의 소쇄원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봉화 닭실마을의 청암정이라는 정자를 보고 영남에도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룬

이런 멋진 정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더구나 소쇄원이나 청암정 둘다 조선 중종14년인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고향에 은거한 선비들이 만든 정원

이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청암정이 중종 21년인 1526년에 충재 권벌에 의해 만들어졌고 소쇄원은 그보다 4년후인

중종 25년인 1530년에 양산보에 의해 만들어 졌다는걸 알고 역사의 우연과 필연에 대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같이 모든게 광속인 시대에는 어디에 멋진 건물이 생겼다면 당장 찾아가 보고 참고로 했겠지만 500여년전

영남의 봉화와 호남의 담양에 두지역을 대표하는 정원이 만들어 졌다는데 무한한 전율을 느낀다.  

  

청암정

권벌(權橃, 1478~1548)이 1526년(중종 21)에 조성한 정자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닭실마을에 있다.

풍수설에 따르면 금닭이 학의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지세라 마을을 ‘닭실’ 또는 ‘유곡(酉谷)’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권벌의 본관은 안동,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冲齋) 또는 훤정(萱亭)이라 하였다. 1507년(중종 2)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참판에 이르렀으나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파직당하고 이곳에 내려와 은거하였다고 한다. 1533년 밀양부사로

복직되어 한성부판윤 등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1547년(명종 2)에 일어난 양재역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丁未士禍)에

연루되어 구례(求體)와 삭주(朔川) 등으로 유배, 고초를 겪다가 삭주에서 죽었다.

선조 때 신원(伸寃)되어 좌의정에 추증, 삼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청암정은 거북 모양의 너럭바위 위에 세운 정자로, 냇물을 끌어 올려 연못을 파고 조촐한 장대석 돌다리를 놓았다.

물 위에 거북이가 떠 있고 그 위에 정자가 놓인 형상이다. 초가가 딸려 있는데, 정내(亭內)에는 ‘靑巖水石(청암수석)’이라

새긴 허목(許穆)이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바위를 평평하게 다듬지 않고 자연 모습 그대로 살려 주춧돌과 기둥 길이로

조정하여 위치에 따라 정자의 높이가 각각 다르다. 정자 한쪽에 마련된 방에는 온돌 구들이 아니고 마루가 깔려 있다.

청암정을 처음 지을 때는 온돌방으로 하고 둘레에 연못도 없었다고 한다. 온돌방에 불을 넣자 바위가 소리 내어 울어 괴이

하게 생각하던 차에 한 스님이 이 바위는 거북이라서 방에다 불을 지피는 것은 거북이 등에다 불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한 후 아궁이를 막고 바위 주변을 파내어 못을 만들어 바위 거북에게 물을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청암정 전경

연못과 정자의 아름다운 조화

 

 

아름다운 돌다리

 

 

 

 

 

청암정 내부

 

 

 

 

 

 

 

 

청암정 내부에서 바라다 본 풍경

 

 

 

 

 

 

 

 

 

 

 

 

 

 

 

 

청암정 바로 옆에 충재 권벌의 유물의 보관한 충재박물관이 있다.

닭실마을을 돌아볼수 있도록 자전거를 대여해 준다.

담양의 소쇄원보다 아기자기한 맛은 부족하지만 기계천의 물을 끌어들여 인공연못을 만들고 바위위에 청암정을 지어놓은 정원은

지금시대에 보아도 멋진 정원으로 손색이 없고 바로 옆을 흐르는 기계천에 연결되는 석천정사와 함께 영남지역 최고의 정원으로 꼽을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