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기념관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청마에 대한 대부분의 자료를 수집해 놓고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청마 사후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님이 발간한 청마의 서한집(청마가 정운에게
보낸 편지모음)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라는 오래된 책자다. 1967년 청마가 교통사고로 죽은지
한달만에 발간되어 당시에는 기록적인 25,000부가 팔렷다는 베스트 셀러였다.
시인 김규태의 인간기행 <2> - 이영도의 청마연서 출판사건 이란 글에 이책이 간행된 일화가 나온다.
청마 유치환은 세계에서 가장 긴 연서를 쓰고 간 시인이다. 아마 기네스북도 이런 고급스러운 기록을 발견했더라면
호재로 삼았을 것이다. 그가 40대 전후의 나이에서 운명한 60세까지 5000여 통의 간절한 연서를 한 여인에게 간단없이
띄웠으니 말할 나위없다. 그것은 하나의 일과였다. 시조를 정갈하게 써 온 정운 이영도는 누가 보더라도 청초한 아름
다움과 남다른 기품을 지닌 여인상이었다. 평생 한복을 입었다. 계절에 맞춰 하늘하늘한 옥색 모시적삼이나 하얀 모시
옷을, 진보라나 검정 한복을 즐겨 입었다. 머리 매무새는 조선조의 여인처럼 동백기름을 발라 뒤로 땋아서 말아 올렸다.
그는 어느 날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만일 재혼을 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남으로부터 손가락질은 젖혀두고라도 더
불행해졌거나 가여움을 받았을 것이다. 자신과 재혼을 주선했던 상대들이 모두 저명한 인사들이었는데 자신보다 먼저
죽었기 때문이란다. 그 가운데는 영문학자이며 시인 수필가인 이양하 교수가 있었다. 이를 두고 일찍이 타계한 예로
삼았다. 딸 하나 있는 청상으로서 불행한 재혼보다 청마와의 염결한 사랑의 지속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얘기다.
청마가 병마 아닌 교통사고로 운명했을 때 이왕 비극은 맞았지만 또 하나의 걱정거리가 생겼다. 이영도는 우선 다른 젊은
여인들이 청마의 연서를 책으로 묶어 내는 것이 두려웠다. 이런 여인들 문제로 잠을 제대로 이룰 수가 없었다. 서둘러야
했다. 이 지상에서 청마를 진정으로 사랑한 당사자는 자신이라는 징표를 남겨두기 위해서다. 청마가 운명하자마자 연서
뭉치를 상품화하는 행위를 부도덕으로 밀어붙일 것이 염려되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 운명한 지 불과 한달 사이다.
이영도는 이 때 평소 청마와 자기 사이의 다리를 묵묵히 놓아 주던 최계락의 얼굴이 떠올랐다. 최계락은 당시 국제신보의
문화부장이었다. 이영도가 최 부장을 은밀히 만나 의논한 끝에 청마의 연서를 최계락의 안목으로 가려 뽑는 조건으로 책으로
묶기로 했다. '사랑했으므로 행복하였네라'란 표제가 붙여졌다. 청마 시의 한 구절에서 따 왔다. 연서집은 2만5000부가량 팔려
나갔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다. 수익금은 뒷날 '현대시학사'에 넘겨져 정운 문학상의 기금으로 적립되었다.
청마가 통영여중에 근무할 당시인 1947년에는 국어 청마 유치환, 음악 윤이상, 미술 전혁림, 가사 정운 이영도 선생님이 가르
쳤다니 그당시 통영여중 학생들은 대단한 선생님들께 배운것이다.
1987년 청마 사후 한달만에 발간된 서한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설명해주시는 청마기념관 관장님
청마의 유명한 시. 행복
유명한 청마의 시들
통영에도 청마문학관이 있다는데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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