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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봉화]"아빠 어디가"에서 윤후가 묵었던 물야면 오록리의 여름풍경

by 柔淡 2013. 4. 14.

영주 부석사 주차장에서 나오자 마자 봉화로가는 길이 있다.

10여년째 주말마다 여행을 다녔으니 우리나라 웬만한 데는 다 가봤다고 자부헤 왔는데 이번에 가보는

봉화, 영양은 지나치기는 했지만 일부러 여행을 온것은 사실 처음이다.

영주에서 봉화로 가는길은 때묻지 않은 전형적인 우리나라 시골길 풍경이다. 이지역의 특산물인 사과

과수원이 줄지어 있고 경지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길양쪽으로는 잘키운 벼들이 꼿꼿하게 서있어 온통

초록이다.강원도의 오지보다 더한 풍경들이 이어지는데 30분쯤 가니 봉화 표지판이 보인다.

이름도 생소한 물야면이다.

 

여주휴게소에서 봉화관광 안내지도를 한장 들고 왔는데 물야면에 장암정과 청간당이라는 문화재가 있다고

나와있어 들려보기로 한다. 그런데 물야 중학교를 지나니 높은 산아래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이 나타난다.

기록을 찾아보니 이동네는 창말, 창촌 (倉村) 이라고 부르며 처음에는 오록이라고 부르다가 마을앞에 큰

창고가 생기면서 부터 창촌이라 부르게 되었다. 마을 윗쪽으로는 매봉산이 우뚝 솟아있고 앞쪽으로는 萬石山,

千石山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으며 마을앞 現在 物野中學校 入口에서부터 마을쪽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약 120m 정도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1688년경 濟州 牧師를 지낸 先祖 金鉦께서 이마을의 터를 잡을때

左靑龍의 꼬리가 짧아 이를 補充하기 위하여 제주솔씨를 가져와 심은 것이라 한다. 豊山金氏 集姓村이다.

道指定 文化財 資料 弟150號인 청간정이 있다.

 

그런데 눈앞에는 청간정은 안보이고 장암정이라는 정자가 보인다.

장암정은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150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록리에 있다.

1724년(경종 4)에 풍산김씨 문중에서 건립하였으며, 지방 유생들과 사림에서 모여 시론을 강론하며 후학들

에게 글을 가르치던 곳이다. 만축정이라고도 불린다.
5량가구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왼쪽에 2칸의 온돌방을 들이고 오른쪽에 대청을

두었는데 오른쪽 방이 왼쪽 방보다 조금 뒤로 물려 배치된 것이 특징이다.
김창조조선 선조 때 의금부도사를 지냈으며, 1635년(인조 13) 여씨향약을 실시할 때 도약정()이

되어 솔선하였고,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장 안방준()에게 군량미를 지급하여 도왔다. 왕이 삼전도

에서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장암정은 문화재로 지정 되었지만 관리가 되지 않아 아주 퇴락해 보인다.

 

오히려 마을 입구에 있는 한옥민박의 풍치가 훨씬 아름답다. 돌담위에 피어있는 능소화가 여름의 정취를 자아내고

대부분 한옥과 돌담으로 남아있는 풍산김씨 집성촌인 오록리가 아늑하고 소박하게 다가온다.

마을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여기저기 돌아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오록리 마을입구 한옥민박집에 피어있는 능소화. 돌담위에 피어난 전형적인 능소화의 아름다운 자태다.

이집에서 윤민수, 윤후부자가 묵었다. TV에는 겨울풍경 이었지만 이건 작년 여름 풍경이다.   

 

 마을입구

 왼쪽으로 조금가니 장암정이 보인다.

 

 

 

 

 

 

 

 

 정자와 연못이 아름다운 곳인데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청간정은 조선 중기 문신인 청간당 김정원(1655∼1735)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선생은 효성이 지극하고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던 분으로 그의 후손인 김탁연이 그를 추모하며 세웠고 후손들의 학문을 지도하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문이 닫혀져 있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위에서 찍었다.

 

 

 

 다시 오록리 마을 입구로 돌아와 풍산김씨 집성촌인 한옥마을을 여기저기 살펴본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전형적인 우리 시골의 아름답고 소박한 풍경이다.

 

 

 곳곳에 거대한 한옥들이 남아있고 집집마다 능소화 몇그루씩을 피어있다. 윤후가 묵은집

 

 

 돌담도 남아있고....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지금까지 돌아본 우리나라 어떤 한옥마을보다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오록리 마을 풍경

 

 

 

 

 

 

 

 한옥민박집

 

 物野中學校 入口에서부터 마을쪽으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 약 120m 정도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1688년경 濟州 牧師를 지낸 先祖 金鉦께서 이마을의 터를 잡을때 左靑龍의 꼬리가 짧아 이를 補充하기 위하여 제주솔씨를 가져와 심은 것이라 한다.

 

오늘 목적지인 닭실마을까지 가기 위해서는 더이상 오래 머물수가 없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