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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임실]고려태조 왕건과 조선태조 이성계가 건국의 계시를 받았다는 성수산 상이암

by 柔淡 2013. 10. 15.

강진면 성심회관에서 아침을 먹고 성수면에 있는 성수산 상이암으로 간다.

 

상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고, 1394년(태조 3)에

각여(覺如)가 중수하였으며,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불탄 것을 1909년 대원(大圓)이 중건하였다. 그뒤 의병대장(義兵隊長) 이석용(李錫庸)이

이 절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하였으므로 왜병(倭兵)에 의해 소실(燒失)되었다가 중건되었는데,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이 세운 것으로, 당우(堂宇)는 법당과 요사채가 있다.

 

성수산 상이암에 전해오는 고려와 조선의 건국설화


성수면 성수산 상이암에는 고려와 조선의 개국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말기 도참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도선스님이 성수산의 산세가 비범하여 천자를 맞이할 성지인 것을 알고 왕건에게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면

대망을 성취할 것이라 권하였다. 백일기도를 마쳤는데도 별다른 일이 없자 왕건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에 목욕재계하고 다시 3일간 간절히 소망을

빈 끝에 마침내 관음보살의 계시를 받았다. 크게 기뻐한 그는 그곳을 환희담(歡喜潭)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 후 왕건은 태봉의 궁예를 몰아내고 황제가

되어 신라를 복속시킨 뒤 국호를 고려라고 고치고 태조가 되었다. 도선스님은 이를 기념하여 그 자리에 도선암이라는 암자를 세웠다고 한다.
 
고려 왕건의 건국설화에 이어 조선건국의 태조 이성계도 이 성수산에 얽힌 건국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려가 쇠퇴하던 말기,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하는 대공을 세우고 남원을 지나 전주로 가던 중 도참설의 대가이던 무학대사는 야심에 찬 그를 도선암에 안내한다. 이성계는 이곳에서 간절히 기도한

끝에 용이 나타나 자신의 몸을 세 번 씻어주는 길몽을 꿨다. 그는 크게 기뻐하여 붓을 들어 그곳 바위에 삼청동(三淸洞)이라고 썼다. 그 후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이곳에서 하늘의 소리를 들었다 하여 도선암을 상이암(上耳庵)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자신이 삼청동이라고 쓴 바위를 어필각(御筆閣)을 지어

보존하게 했다고 한다.

 

이후 상이암은 의병대장 이석용(李錫庸)에 의해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었고 왜병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58년 상이암재건위원들에 의해 다시 세워졌다.

경내에 전라북도문화재자료 제124호로 지정된 부도(浮屠)가 있다. 성수면에는 이석용 외 28의사를 모셔놓은 소충사(昭忠祠)가 있다.

 

성수산 거의 9부능선에 상이암이 자리잡고 있다.

 

상이암 입구

 성수산 자락에 자연휴양림이 자리잡고 있는데 길이 좁아 버스는 못올라가고 승용차만 갈수잇다.

 

 

 

 

 

 드디어 상이암에 올라왔다.

 

 이태조의 친필 삼청동

 

 

 무량수전

 

 요사채

 칠성각

 

 

 

 

 

 

 

 

 

 

 천남성 열매. 사약의 재료다.

 꽃향유

 

 

 

 성수산 자연휴양림 계곡

고려와 조선 두개의 왕조가 여기서 기도후에 건국을 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데 그 이름이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산세와 기를 갖춘 기도처 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