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는 1636년(인조 14)에 작성된 「호남도구례현지리산대화엄사사적(湖南道求禮縣華嚴寺事蹟)」 등 여러 문헌에서 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각황전은 본래 장륙전(丈六殿)으로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아 3층 7칸으로 건립하였으며 내부에는 화엄석경
(華嚴石經 : 화엄경 원전을 엷은 청색 돌에 새긴 것, 보물 제1040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에 “연기는 황룡사의 승려로서 754년(경덕왕 13) 8월부터 화엄경 사경(寫經 : 후세에 전하거나 공덕을 쌓기
위해 베낀 경전)을 만들기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경내의 석조물들과 화엄석경의 글씨체도 8세기의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화엄사와 장륙전은 8세기에 중후반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장륙전은 임진왜란 때 5,000여 칸에 이르는
화엄사의 전각들이 대부분 불에 타면서 함께 소실되었다.
화엄사는 1630년(인조 8) 벽암대사가 중건을 시작하여 1636년(인조 14)에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1699년(숙종 25)에는
벽암대사의 제자인 계파(桂波) 성능선사(性能禪師)가 왕실의 후원을 받아 4년 동안 중창불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장륙전은 1702년(숙종
28) 중건되었으며 2층 7칸으로 전보다 층수가 줄어들었다. 완공 후 숙종은 자신이 직접 쓴 ‘각황보전(覺皇寶殿)’이라는 편액을 내려 이때부터
각황보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이듬해에는 3여래와 4보살상을 봉안하였는데 중건 이전에는 금산사 미륵전처럼 입상(立像)이 모셔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각황전은 1768년(영조 44), 1847년(헌종 13), 1851년(철종 2)에 각각 중수하고, 1860년(철종 11)에는 후불탱화 3폭을 조성하여 후불벽에
걸었다. 1885년(고종 22)에 또다시 중수하였고 1936년부터 1941년까지 해체·보수되었다. 1961년에 보수한 뒤 이듬해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부분적인 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례화엄사각황전 [求禮華嚴寺覺皇殿]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각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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