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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구례]적멸보궁 4사자 3층석탑과 구층암

by 柔淡 2015. 3. 25.

2013년 가을에 왔을때 4사자 석등은 제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수리중이다.

 

높이 5.5m. 국보 제35호. 전체 부재를 화강암으로 조성한 이 사자탑은 경주의 불국사다보탑(, 국보 제20호)과 더불어 우수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화엄사 가람 중심에서 서북방의 ‘효대()’라고 불리는 높은 대지에 건립되어 있는데 이 탑의 바로 앞에는

석등 1기가 배치되어 있어서 본래부터 이 장소가 석탑을 세우기 위하여 마련된 곳임을 알 수 있다.

 

기본조형은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얹고 그 정상에 상륜부()를 놓은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서

특이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각형과 원호와 또 하나의 각형 굄 순서로 높직한 3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하층기단을 받고

있다.

하층기단 면석 각 면에는 양쪽 우주가 각출되었을 뿐 중간에는 탱주가 없다. 그러나 각 면에는 고식()의 큼직한 안상()을 3구씩 오목

새김하고 그 안에 천인상()을 1좌씩 12구를 돋을새김하였다. 보관과 영락()으로 동체( : 몸체)를 장식하고 천의()를

공중에 휘날리며 앉은 자세는 모두 같으나, 연화대 위에 앉은 법석과 지물()은 각기 다르다.

어떤 좌상은 악기를 들어 연주하고 있고 혹은 팔을 벌려 춤을 추고 있으며 어떤 천인은 꽃을 바쳐 공양하고 있어 이 여러 천인상들이 모두

불천( : 부처의 존칭)을 찬미하고 있는 자세로 보인다.

상층기단은 우주를 대신하여 연화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암수 두 쌍의 사자를 한마리씩 지주() 삼아 네 귀에 배치하고 정상에도 하대와

대칭되게 연화대를 얹어 널찍한 갑석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또한 찰주( : 탑의 중심기둥) 대신 연화대 위에 합장한 대덕()

의 입상을 안치하고 갑석의 하면 중앙에도 연화문을 장식하여 천개()를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네 귀에 앉은 석사자상과 중앙에 서 있는 대덕의 모습인데, 네 마리의 석사자는 상하 앙복련화대() 위에 앞발

을 뻗고 뒷발을 구부려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곧 불국사다보탑의 석사자상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원각한 대덕의 입상은 얼굴의 인상이나 몸에 걸친 가사의 문양과 균형 잡힌 체구 등이 당시의 불상과도 같은 조성수법을 보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대덕은 사자상과는 달리 머리가 갑석에 붙지 않고 있으므로 갑석은 4구의 사자만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

그러므로 네 마리의 사자를 일반형 석탑의 상층기단 부재에 비한다면 곧 각 면의 양쪽 우주로 볼 수 있고 혹은 불국사다보탑 기단부의 방형4주()와도 비유할 수 있는 구실을 하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1매석으로 만들어지고 그 상면에는 2단의 굄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수법은 곧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1석씩으로서 일반형 석탑의 탑신부와 같으나 초층옥신석 4면에 각기 문비형()을 새기고, 그 좌우로

여러 가지 존상()을 조각하였다. 즉 정면에는 인왕상, 양측면에는 사천왕상, 그리고 뒷면에는 보살상을 돋을새김하여 장엄하였다.

이 위의 2·3층 옥신석은 초층과는 전혀 달리 양쪽 우주가 정연하게 각출되었을 뿐 아무런 장식조각이 없다. 옥개석은 초층부터 3층이 모두

같은 형식으로서 처마의 받침이 5단씩이고 상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 굄을 각출하여 그 위에 부재를 받게 되어 있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네 귀 전각의 반전이 예리하여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음은 신라 성대()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며, 상륜부는

노반석 위에 복발만이 원형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석탑의 건립연대는 각 부의 조각수법이나 건조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성대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사자석탑으로는 유일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과 구층암

 

 

 

 

구층암 가는길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산내 암자이다. 전하는 유물로 보아 신라말에 창건된 것으로 보이며, 사찰 이름으로 보아 본래

구층석탑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건물로는 천불보전과 수세전·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중 천불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으며 뒤에는

토불() 1,000개가 모셔져 있다.

탱화는 제석탱화가 걸려 있다. 수세전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산신탱화와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요사채는 천불보전

좌우에 있다.

유물로는 동종과 석등·삼층석탑 등이 있다. 이중 동종은 1728년(조선 영조 4) 조성된 것으로 높이 64cm이다. 석등은 고려초의 유물로 추정

되며 높이 224cm이다. 옥개석 윗면에는 복련이 조각되어 있고 상륜에는 보주가 남아 있다. 간석과 화사석은 1961년에 보수하였으나 전체적

으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 때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은 기단이 2층이고, 상층 기단은 4장의 판석을 짜맞추어 만들었다. 탑신부 중 1층 한면에는 결갑

부좌한 불상을 돋을새김으로 새겨 넣었다. 1961년 9월 주변에 흩어져 있던 탑재를 모아 복원한 유물이다.

왼쪽 요사 처마 아래에는 1829년(순조 29) 석잠()이 쓴 〈해동봉성현지리산화엄사봉천암중수기〉와 1900년(광무 4) 송암()이 쓴 〈등봉천암()〉 등의 현판이 걸려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구층암 [九層庵] (두산백과)

 

 

모과나무 기둥이 이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