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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동유럽·발칸7개국

동유럽/발칸 095 - 0428 독일 뮌헨 국립극장과 막스요셉광장

by 柔淡 2016. 7. 13.

10시쯤 뮌헨에 도착해 국립극장앞 막스요셉광장앞에 버스를 세워놓고 마리엔광장과 시청사 등을 돌아본다.


뮌헨은 바이에른 알프스 산지 가까이 이자르강()에 면하여 있다. 베네딕투스회()를 기원으로 하는 도시이다. 1157년 바이에른 공작이던 하인리히 사자공이 수도사들에게 잘츠부르크로부터 이자르강에 이르는 곳에 시장을 개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이듬해 이자르강을 건너는 다리가 건설되었고 시장 주위로는 성이 구축되었다.

1180년 바이에른 공국을 계승한 비텔스바흐 가문에서는 1255년 뮌헨을 도읍으로 삼았다. 14세기 초 이 가문 출신으로는 최초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루트비히 4세(Ludwig IV)에 의해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고, 14세기 말~15세기 초 선제후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치하에서 경제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30년전쟁(1618∼1648) 중 한때 구스타브 2세 휘하의 스웨덴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하였고(1632), 1634년에는 전염병 페스트가 창궐하여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1825~1848년 재위에 있던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는 오늘날의 뮌헨을 기획하고 탄생시켰으며, 그가 선임한 건축가들로 하여금 공공 건축물을 통하여 뮌헨의 특징적인 모습을 확립하도록 하였다. 19세기에 도시는 크게 성장하고 발전하였다. 신교도들도 로마가톨릭의 도시였던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1854년 10만 명에 불과하였던 인구는 1900년에 이르러 50만 명으로 증가하였다. 이어 루트비히 2세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를 후원함으로써 음악과 무대의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다.

비텔스바흐 왕조의 지배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 루트비히 3세가 퇴위함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 후 뮌헨은 우익 정당들의 온상이 되었으며,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가 나치스당에 가담하여 그 지도자가 되었던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1923년 바이에른 당국에 저항하여 폭동을 일으키려고 모의하던 장소인 맥주 창고는 아직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절반 가까운 건축물이 파괴되었다.

구시가는 점차 기업 활동의 중심지가 되면서 과거의 특징을 많이 상실하였다. 아직도 남아 있는 건축물 가운데는 7개의 성문 중 카를스, 젠들링거, 이자어 등 3개가 있는데 모두 14세기에 세워진 것이다. 다른 중세의 건축물로는 뮌헨대성당, 1468∼1488년 건립된 프라우엔키르헤(Frauenkirche), 1470∼1480년 건립된 구시청사 등이 있다.

부근에는 1169년 건립된 장크트페터성당이 있는데, 뮌헨에서 가장 오래 된 성당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완전히 파괴되었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 옛날 무기고였던 곳은 2000년 현재 시립박물관이 되어 있다. 이들 중세 건물 이외에도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의 건축물도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뮌헨 [Munich] (두산백과)











뮌헨 국립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