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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부산·울산·대구·경상

[울진]조선시대의 예언자, 격암 남사고 유적지

by 柔淡 2017. 12. 7.

성류굴에서 서쪽으로 5분쯤 더 들어가면 조선시대 최고의 예언자 격암 남사고 유적지가 나온다.


남사고(南師古, 1509년 ~ 1571년)는 조선 중기학자이다. 본관영양(英陽), 자는 경원(景元) 또는 경초(景初) 복초(復初),

«대학(大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에서 깨달은 바가 있서 호(號)를 격암(格庵)이라하였다.

역학(易學)·참위(讖緯)·감여(堪輿)·천문(天文)·지리(地理) · 관상(觀相)·복서(卜筮)에 통달했다고 알려져 있다.

중종(中宗) 4년(1509) 울진 수곡리에서 이조 좌랑 (吏曹佐郞: 정6품 전랑) 남희백(南希伯)의 아들로 출생, 어려서는 유학(儒學)에 심취,

중년에는 역학, 천문, 지리 등에 통달하였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였고, 확고한 뜻을 세워 학문이나 재물을 쉽게 또는 구차하게

얻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절제된 자세를 견지하였으며, 평생동안 «소학(小學)» 을 책상 위에 두고 보면서 몸소 실천하였다.

명종 19(1564)에 효렴(孝廉)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사직서(社稷署) 참봉(參奉)에 제수됨, 말년에 천문학 교수(종6품)을 역임하였다.

명종 말기에 이미 1575년(선조 8)의 동서분당(東西分黨)을 예언하였고, 임진년(1592)에 백마를 탄 사람이 남쪽으로부터 나라를 침범

하리라 하였는데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백마를 타고 쳐들어왔다.

죽은 뒤 1709년(숙종 35)에 울진의 향사(鄕祠)에 배향되었으며, 후세 사람들이 ‘해동강절(海東康節)’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