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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고궁,사찰,기타)

내소사 (06. 02. 25)

by 柔淡 2006. 2. 26.

노루귀, 복수초를 원없이 보고 내소사로 내려오니 15:40분 정도, 흐린 날씨라 산속의 절은

이미 저녁 어스름이 기까이에 와 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라서인지 절을 찾은 관람객들이

아주 많다.

 

내소사

 

 내소사(來蘇寺)는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석포리 위치한 사찰로, 능가산(관음봉:433m) 가선봉 기슭에 자리잡아 있다. 이 때문에 내소사를 '능가산 내소사'라고 부른다.
내소사(來蘇寺)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소래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고찰(古刹)로,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의 내소사는 예전의 소소래사다. 내소사는 과거에 '소래사(蘇來寺)'였음이 성종 17년(1486)에 간행된《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와 이규보(李奎報)의《남행일기(南行日記)》에 기록되어 있다.
 또 최자(崔滋)의《보한집(補閑集)》에도 고려 인종 때 정지상(鄭知常)이 지은〈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기록되어 있는데, '소래사'가 언제 '내소사'로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절에 들러 시주했기 때문에 소래사가 내소사로 되었다는 말이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백양사의 말사로 있었으나, 지금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의 말사이다. 고려때의 사적은 전해지지 않고, 조선 인조11년(1633)에 청민(淸旻)선사가 '대웅보전(大雄寶殿)'을 지었는데, 이 대웅보전은 조선 중기 사찰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을만큼 정교하고 예술적이다.
그 후 고종 2년(1865)에
관해선사(觀海禪師)가 중수하고 만허선사(萬虛禪師)가 보수한 뒤, 1983년 혜산우암 선사(慧山愚岩禪師)가 중창하여 현재의 대가람을 이루었고, 부속암자로는 청련암(淸蓮庵), 지장암(地藏庵)이 있다.

 

 

 

 

 

 

 

 

 

설선당과 요사채

설선당(設禪堂)은 승려들과 일반 신도들의 수학 정진 장소이며, 요사(寮舍)는 승려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1986년 9월 8일 전북유형문화재 제125호로 지정되었다.
설선당은 조선 인조 18년(1640년) 청영대사(淸映大師)가 창건했다고 하며, 요사도 이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선당은 정면 6칸 측면 1칸, 요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2층 의 건물로, 전면 중앙의 설선당을 중심으로 4면을 건물로 연결하고, 내부에 안마당을 둔 회자형(字形)의 특이한 건축양식이다.
'설선당'과 '요사' 이 두 건물은 서로 높낮이가 다르지만 인위적으로 땅을 평평하게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초석만을 사용하여, 설선당 동쪽과 요사의 서쪽 서까래 일부를 잘라내고 건물의 용마루를 끼워서 지붕을 서로 맞추어 건립하였다. 옛 선인들의 지혜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건물이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어 내부까지 자세하게 살펴 볼 수는 없겠지만, 우리 나라 전통 건물의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건물이니, 기회가 되면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대웅보전

선종(禪宗)계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신 본당을 '대웅전'이라 하고, 큰절에서 대웅전의 격을 한층 더 높여 '대웅보전(大雄寶殿)'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절에 가서나 '대웅전', '대웅보전'이라는 현판만 보인다면 그 안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다는걸 알 수 있다.

대웅보전은 여러 가지 측면(건축기법, 벽화, 전설, 꽃창살 등)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데, 차근차근 한번 살펴보자.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 불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봉안되어 있고, 불화로는 영산후불탱화, 지장탱화 및 후불벽화로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후불벽화로는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황금빛 날개를 가진 새가 그렸다고 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인간의 솜씨를 넘은 성스러운 모습이다.  관음보살님의 눈을 보면서 좌 우로 왔다 갔다 해보면 관음보살님 눈동자가 내가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움직이는데(물론 사람에 따라 안보일 수도 있다.),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속설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의 꽃살문은 현존하는 사찰의 꽃살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각 솜씨가 정교하며, 불성의 깨우치는 단계를 꽃봉오리와 활짱 핀 꽃에 비유하여 표현하였다. 8짝의 문짝을 연꽃, 국화꽃, 해바라기 꽃등으로 가득 심어 놓은 듯한데, 화려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이다.

원래는 채색이 되어 있었겠지만, 수백년 세월의 풍파속에 지금은 보들보들한 나무 결이 그대로 드러나 감동을 더해준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겠나 전설속 목수의 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대웅보전 앞 마당 왼쪽에는 무설당(無說堂)이 있고 오른쪽에는 설선당(說禪堂)이 있는데, 처마를 마주보고 서 있으면서도 대조적인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無說'과 '說禪'의 한자풀이를 해보면 알 수 있다.

 

 

3층석탑

이 탑은 고려시대에 만든 것이나 신라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높이는 3.46mm 이다. 2층 기단 위에 3층탑의이 올려져 있으며, 맨 아래의 받침대는 하나의 돌을 이용한것이다.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들의 경사도 심한편으로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신라시대 석탑의 특징을 가진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중요한 탑으로, 1986년 9월 8일 전북유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봉래루

대부분의 사찰 건물에서 봉래루는 대웅보전 바로 앞에 누각과 문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 위쪽은 누각이 되고, 아래쪽은 대웅보전으로 통하는 통로가 된다. 사람 하나 통과할 높이로 키큰 사람이라면 머리가 닿지않을까 아슬아슬 할 것이다.
원래 봉래루의 높이는 이보다 50cm 정도 더 낮았다고 한다. 그것은 불교가 탄압을 받을 때 양반들이 하마하지 않고 대웅보전까지 진입을 해서 예불을 올렸는데, 이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봉래루 마루면이 대웅보전 앞 마당면과 거의 일치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 모습을 대략 짐작케 한다. 십수년전에 봉래루 아래로 사람들이 통과할 수 있도록 일부러 1층 기둥을 높이는 공사를 하였는데, 이는 오히려 가람 전체의 수평적 공간감이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와 적지 않은 비난을 받고 있다.

 

 

범종각은 당산목 오른쪽에 위치했다. 보통 범종각 안에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이렇게 네가지 타악기가 있는데, 이를 총칭하여 '불전사물'이라 부른다.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들에게 전해 깨달음과 해탈을 염원하는 중생구제의 의미로 아침, 저녁 예불(禮佛)과 모든 불교행사 의식 등에서 이용되는 이 네 가지 악기는 각기 고유한 음색을 지니고 있으며 의미 또한 독특하다. 이것들의 의미를 찾아보는 것 또한 솔솔한 맛이 있다

 

 

 

 

당산목 좌측 길을 따라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300년된 큰 보리수가 있다. 그 좌측에 보종각이 자리잡아 있다. 보종각에는 보물 제 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이 보관되어 있다. 종 전체에 퍼져있는 푸르스름한 녹이 기나긴 세월속의 풍파를 짐작케 한다.

고려동종은 원래 이곳에 있지 않았다. 1222(고려 고종 9)년 청님사 종으로 주조되었다가 절이 없어진 뒤 찾을 길 없다가, 1853(조선 철종 4)년 청림사 터에서 발견되었다. 발견당시 종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가져가기로 했는데, 내소사 스님이 종을 치자 비로소 아름다운 울림이 이어져 내소사로 오게되었다고 한다.

 

 

 

전나무길이 끝나고 양옆으로 서있는 단풍나무길을 지나면 천왕문에 다다르는데, 부리부리한 눈으로 잔뜩 화를 내는듯한 사천왕상의 무서운 얼굴을 보면 사찰 경내에 들어왔음을 세삼 실감하게 된다. 사천왕을 지나면 가슴 탁 트이는 사찰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액자안에 그려진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왼쪽에 하래원,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으며, 정면에는 당산목, 봉래루, 설선당이 있고 , 좌우로 약간씩 비켜서서 보종각과 범종각이 위치해있다. 수령 950년의 당산목이 유독 눈길을 끄는데, 이 나무는 일주문 입구에 있는 할머니당산목과 쌍을 이루는 할아버지당산목이다. 당산목 옆에서 약수 한모금 마시고 얕으막한 석축단을 따라 이동할 수 있다.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기둥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한데, 대부분의 사찰이 그러하듯이 일주문은 사찰에 들어서는 산문(山門) 중 첫번째 문으로 절 입구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게 되는 문을 말한다. 즉, 여기서부터 사원 경내임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매표소에서 입장료와 사찰관람료를 지불하시고 들어서면  약 5~600미터 전나무숲길이 쭉~ 이어지고 천왕문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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