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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고궁,사찰,기타)

‘전통연희, 경복궁에서 놀다’ - 5 (08. 11. 01)

by 柔淡 2008. 11. 5.

제자의 줄타기에 이어서 남사당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어름산이 권원태씨가 줄타기를 한다.

 

권원태 (다음사전에서 인용)

 

안성 남사당 풍물패 어름산이 1967년 부산 출생 1976년 줄타기 입문 1983년 경남 남해에서 중학교 졸업 1995년 조영희씨와 결혼,

 2002년 중국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50주년 기념공연 2003년 공연 중 다리 골절상으로 3개월간 깁스 신세, 2003년 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 상임단원, 2004년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줄타기 대회에서 우승

영화 "왕의남자"에서 주인공 감우성의 대역으로 줄타기를 하여 유명해짐

 

줄타기에 대해서는 그의 홈페이지 "줄타기 권원태" 에서 가져왔다. (http://www.jultagi.net/main/index.php)

 

‘줄타기’는 또 ‘줄얼음타기’ 라고도 하니 한문(漢文)에 고환(高桓), 무환(無桓), 주색(走索), 승기(繩技), 희승(戱繩) 등으로 쓰고 석어 유해

(譯語 類解)에는 사연색(足麗軟索)이라 하고, 성호사설(星湖僿說)에는 이것을 답색회(踏索?)라 하였다.『고금예술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후한(後漢)시대 하정일(賀正日)에 큰 줄을 양기둥에 잡아 매어 거리를 수장(數丈)되게 하고 두 기녀(伎女)로 하여금 줄 위에서 춤추게 하면

만나면서 춤추되 떨어지지 않았다” 고 했으니 줄타기의 기원이 오램을 알 것이며 양나라 때에는 ‘고환’이 악부(樂部)에 들었고, 당대(黨代)에는 아마

인도의 기법(技法)을 받아들여 이른바 산악백희(散樂百戱)의 하나로 일반에게 보여졌으며, 후에는 오로지 주색(走索)으로서 세상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줄타기의 시작이 언제였는가는 알 수 없으나, 신라 고려의 백희(百戱)라는 것 중에 이것이 들었을 것을 생각할 수 있으며, 이조 이후로는

 ‘산악’의 유(類)를 '정재'라 하여 모두 '나례도감'에 예속하고 주로 중국의 사신을 영접함에 임(任)케 하니 ‘나례’ 중의 승희(繩戱)는 대단히 빼어나서

타인의 극찬을 받아 나라의 작은자랑 이 되었다.
『성호새설』에 줄타기를 일러 가로되, “… 동속(東俗)에 이 기예가 절교하여 북사(北使) 보고서 말하기를 천하에 없는 것이라 하였는데, 우리 동인(東人)

이 백사(百事)에 비열하면서 이따위 창우의 정대는 ...

 

정재’에는 이 밖에도 ‘솟대타기’ ‘발등거리’ ‘죽방울치기’ 등 허다한 종목이 있지만, 그 전통이 시방까지 분명히 전하는 것은 오직 이 ‘줄타기’ 가 있을

뿐이며 기타는 일괄하여 ‘땅재조’ 라 하되 보잘것이 없어졌다.

 

 제자의 줄타기를 준비해 주기 위해 줄의 설치를 점검

 제자의 줄타기가 끝나고 본인이 직접 줄을 타는 모습

 

 

 

 

 그의 구수한 재담과 줄타기를 보면 자꾸 보고들어도 또보고 싶다.

 

 

 

 

 

 

 

 

 

 

 

 

 

 

 

 

 

 

 

 

 

 

 

 

 

 

 

 위로 뛰어올라 360도를 회전한다.

 

 

 

 

 

 

 

 

 

 

 

 

 

 혼신의 힘을 다해 줄타기를 하는 그에게서 카리스마와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