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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광주·전라

월출산의 폐사지 - 월남사지

by 柔淡 2009. 8. 18.

강진다원을 출발해서 차로 5분정도가면 월남마을 한가운데 평지에 월남사지 석탑이 홀로 쓸쓸하게 서있다.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배경으로 하여 남향을 하고 있는 현 월남마을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는 민가들이 들어서 있으며 또 마을 입구 양편에는

석탑과 진각국사비(眞覺國師碑)가 있다.

월남사에 대한 전해지는 문헌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월남사재월출산남고려승진각소창유이규보비(月南寺在月出山南高麗僧眞覺所創有李奎報碑)」라는 기록이 보인다. 즉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는데 고려시대 진각국사가 창건하였으며 이규보가 찬한 비가 있다"하였다. 그러나 월남사가 언제 폐찰되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인근에 있는 무위사 사적(無爲寺 事蹟)에 의하면 정유재란 당시 이 일대의 사찰들이 모두 병화로 인해 소실되었으나 무위사만 홀로 남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정유재란때 소실되고 폐찰이 된 뒤에 마을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당지(金堂地)로 보인 곳(832번지)에는 건물초석과 기단으로 보이는

축대가 남아 있으며 또 마을 어귀의 돌담장 근처에서 옛기와편을 비롯하여 청자·백자편은 물론 탑재로 쓰인 장방형의 판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에 현 삼층석탑 우측에 있는 어느 민가의 장독대에서 석탑의 지붕돌인 옥개석이 발견된 바 있는데, 현지 주민들의 구전된 바로는 월남사지에는 원래 두 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이 옥개석의 세부기법이 백제계 석탑 양식의 월남사지삼층석탑과 다른 신라전형양식의 기법이라는 점이다. 왜 한 절터에서 백제계석탑과

신라전형양식의 석탑이 공존한 이유와 더불어 월남사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정밀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앞에서 언급한 대로 고려시대 진각국사(1178∼1234)가 창건하였다는 기록대로라면 월남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으며 삼층석탑의 조성시기 또한 13세기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석탑에 대한

거대한 규모나 부여정림사지석탑계의 백제계탑들이 고려초반기에서부터 출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진각국사가 창건하였다는 기록은 당시 월남사의 중창일

가능성이 있으며 오히려 최초의 창건은 이 보다 더 연대를 올려잡아야 되지 않을까 한다.

 

 

 

 

 

 

 

 

 

 

 

 

 

 

 

 

 

 세월의 무상함을 아는듯 모르는듯

 

 조촐한 월남사의 돌담위엔 능소화만 요염하게 피어있다.

 

 아쉽게도 사전지식이 없어 진각국사 석탑을 찍지못했다.

공부를 좀 더하고 갔어야 하는데 대충 살펴보고 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