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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경기·인천

조선 최고의 예인, 남사당공연 바우덕이 (09. 08. 29)

by 柔淡 2009. 9. 8.

마노아트센터를 둘러보기전 바로 옆에 있는 남사당 공연장에 가보니 마당에서는 공연준비가 한참이다.

관람객들은 너도나도 먹을거리를 싸들고 한시간 전부터 좋은자리를 찾아 앉아있다.

나도 데이지와 사진찍기 좋은곳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기다린다.

 

안성관광홈페이지 소개글

안성에 "바우덕이"라는 여자꼭두쇠가 있었다. 사내 마음을 사로잡는 뛰어난 미모와 옹골찬 소리가락, 산들산들 바람에 휘날리는 줄타기 재주가 당내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고 한다. 그녀의 자태가 너무 고와 시름시름 가슴 앓은 남정네가 양반, 상민 할 것 없이 허다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당대 최고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최고 스타였던것. 아마 이효리나 손담비보다 더 인기가 있었을 듯.

 

 남사당 최고인 꼭두쇠 바우덕이(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암덕(岩德)이기 때문에 岩을 바위로 풀어 바우덕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는 남사당패의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자 꼭두쇠. 안성 서운면 청룡리 불당골에서 염불, 소고춤, 풍물, 줄타기 등 온갖 남사당 기예를 익혔으며, 뛰어난 기량으로 세상에 나가 판놀음을 걸판지게 펼쳐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었을 정도였다.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미색을 겸비한 총기로 남사당패의 꼭두쇠로 추앙받았고 꼭두쇠로 활동하며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여 남사당패의 전성기를 이루어냈다. 남사당패는 맨위에 꼭두쇠가 있고 그 밑에 곰뱅이쇠, 뜬쇠, 가열, 삐리, 저승패, 동짐꾼 등으로 구성되어 풍물,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 등의 놀이를 행하였다.

안성 남사당의 맥은 조선조 말기의 바우덕이로부터 시작해 김복만 - 원육덕 - 이원보 - 김기복으로 이어졌고 해체와 결성을 거듭하면서 끈질긴 맥을 잇고 있는 것이다. 본래 남사당패의 풍물놀이란 옷다리가락을 주축으로 하여 진풀이, 무동, 벅구놀이, 채상놀이, 선서리 등의 몸재주와 묘기에 소리(산타령, 새타령, 모찌는 소리, 논매는 소리등)까지 곁들이니 훌륭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풍물이란 우리나라 특유의 민중 음악이며, 남사당패에 의하여 더돌이 판굿모임에 맞게 놀이성이 풍부하게 짜여진 것이다.

안성의 남사당 풍물놀이는 남도 농악에 비해 무동의 수가 많고 5무동을 비롯한 3무동, 4무동, 단무동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펼쳐지며 최고의 기량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7무동 무예이다. 안성 최고의전통놀이인 남사당 풍물놀이를 계승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보개면 복평리에 남사당 풍물놀이 전수관이 조성되었다.

전수관 앞마당에는 황토를 다져 야외 무대를 갖추고 있으며 아트센터마노와 한 곳에 있어 문화의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안성남사당 풍물놀이 보존회에서 남사당 전수관 개관을 기념하면서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6시30분에 남사당 전수관 공연장에서 무료 상설공연을 갖는다.
또한 안성 남사당 풍물놀이 전수교육도 실시한다.

 
상설공연

◈ 시간 : 2008.4.5∼10.25 매주 토요일 3시, 6시30분(夏), 7시(冬)
- 계절별로 공연 시작시간이 변경됩니다. (공연일정표 참고하세요)

◈ 장소 : 남사당전수관 야외공연장 (우천시 실내공연장)

◈ 출연 : 안성시립남사당바우덕이풍물단

◈ 주요 프로그램
-고 사 굿
-살 판 (땅재주 놀이)
-어 름 (줄타기 놀이)
-덧 뵈 기 (탈놀음)
-덜 미 (꼭두각시 인형극)
-풍물놀이
-버나놀이
-무동놀이
-상모놀이
-관객과 함께 하는 뒷풀이 마당

 
체험교실

시간 : 16:30 ~ 17:30(유료)
쳣째, 셋째주 : 얼쑤 ~ 탈놀이
둘째, 넷째주 : 몸으로 배우는 풍물놀이

 바우덕이 풍물단 상임단원중 어름(줄타기)을 계승하는 미모의 박지나 양이 오늘 저녁 줄타기의 주인공이다.

상임단원에는 줄타기의 명인이며 왕의남자에서 공길의 대역으로 유명한 권원태씨도 있다.

 바우덕이’는 조선시대 후기에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여자로서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인 ‘꼭두쇠’가 되어 남사당패를 이끌던 사람이다. 1848년 안성의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1853년 5세의 어린나이에 안성 남사당패에 맡겨져서 노래, 줄타기, 악기연주, 살판 등 갖가지 기예를 익혔다.

바우덕이는 어려서부터 줄타기, 살판, 노래, 풍물놀이 등 남사당 놀이의 모든 기예에 남다른 소질을 발휘하여 남사당패와 함께 공연을 나가면 관람객으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받았다고 한다. 안성 남사당패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고 벌어들이는 수익도 늘어나는 등 남사당패 내부에서도 바우덕이의 존재 가치는 더욱

커졌다. 바우덕이가 15세가 되었을 때 안성 남사당패를 이끌던 꼭두쇠가 연로하여 새로운 꼭두쇠를 선출하게 되었는데 이때 나이가 어린 바우덕이가 모든 단원

들의 만장일치로 꼭두쇠로 선출되었다. 당시로서는 나이가 15세밖에 안되었고 더군다나 여자의 신분으로 남사당패의 꼭두쇠가 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바우덕이의 뛰어난 예술적 소질과 공연장에서의 스타성을 인정한 결과였다.

이후 바우덕이가 이끄는 안성 남사당패는 전국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고종2년(1865) 흥선대원군이 안성남사당패를 불러들여 경복궁 중건 사업에 지친 노역자들을 위로하였는데 최고의 공연을 펼쳐서 노역자들을 기쁘게 해주었고

흥선대원군은 감사의 표시로 당상관 정3품의 벼슬에 해당하는 옥관자를 수여하였다. 이때부터 안성 남사당패는 전국 남사당패와 모든 놀이패의 최고 우두머리

단체로 활동하였으며, “바우덕이패가 왔다. 바우덕이다”와 같이 “바우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때부터 대한민국 연예가 발생한 시점으로 보고 있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연예인을 그래서 “바우덕이”라고 평가한다.

바우덕이는 이후로도 전국을 다니며 남사당이라는 천한 놀이문화를 대중공연문화로 발전시켜 백성들의 억눌린 한을 풀어 내리고 위로하는 활동을 지속하다가

힘든 유랑 생활 속에서 폐병을 얻게 되고 1870년 23세의 어린 나이에 숨을 거두게 된다. 남사당패가 바우덕이의 주검을 수습하여 장례를 지냈다.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 바우덕이의 무덤이 있다.

 

 여섯시가 되기도 전에 고연준비가 완료되고 관객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제일먼저 악대들이 자리를 잡고

 바우덕이인 박지나양이 화려하게 등장한다.

 

 미모이고 어린나이에 이렇게 어렵고 힘든 줄타기를 배웠을까?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우리의 전통문화가 계승되는게 아닐까?

 

 

 

 줄아래의 사람(바람잡이?)과 재미있는 재담도 하면서

 어려운 묘기도 아주 잘 한다.

 

 

 이 사람이 바우덕이의 묘기를 더욱 돋보이게한다.

 

 

 줄타기 중에서도 아주 어렵다는 기뤃, 정확한 명칭은 모르겟다.

 

 

 

 줄위에서 이리저리 뛰고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이다.

 

 

 

 이것도 아주 어려운 기술

 공연의 백미인 줄타기는 일곱시 5분부터 30분가지 정확하게 25분동안 공연한다.

 공연이 끝나고 수고한 악단에게 관객의 박수를 유도한다. 

 줄타기 공연을 마치고 다음 공연인 풍물놀이를 하기위해 마당을 비워두고 준비를 한다.

 선선한 가을밤,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남사당의 공연을 보는것은 아주 큰 즐거움일 것이다.

다음 공연은 흥겨운 풍물놀이, 다음편을 기대 하시라!

 

공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안성시립 바우덕이 풍물단 (http://www.namsadangnori.org/)의 홈페이지를 참고 하시라.